ΠΡΟΣ ΕΒΡΑΙΟΥΣ 히브리서

 ΠΡΟΣ ΕΒΡΑΙΟΥΣ 히브리서


1장

1절 Πολυμερῶς καὶ πολυτρόπως πάλαι ὁ θεὸς λαλήσας τοῖς πατράσιν ἐν τοῖς προφήταις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토이스 프로테타이스)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호 데오스)이』(개역개정)

『지나간 옛적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헬라어 번역성경)

토이스 프로페타이스(τοῖς προφήταις)는 선지자를 통하여 라기 보다, 선지자의 심령 안에서 라는 의미다. 성도의 심령 안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호 데오스(ὁ θεὸς)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사탄과 천사로 인해서,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그 예정에 따라, 물질세계가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고, 그리스도께서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고 세상에 육신으로 잠깐씩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세상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이시며,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고, 육신으로 이 세상에 왔을 때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으므로, 보좌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관계를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시므로 삼위일체가 되는 것이다. 만일 이 물질세계가 없다면 하나님은 삼위의 모습으로 나타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삼위는 그리스도를 예정하시므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심판하시므로 여호와 하나님만 계시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호 데오스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지만,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호 데오스는 호 로고스이시며,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고, 육체로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성도의 심령 안에 역사하시는 분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예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2절ἐπ’ ἐσχάτου τῶν ἡμερῶν τούτων ἐλάλησεν ἡμῖν ἐν υἱῷ, ὃν ἔθηκεν κληρονόμον πάντων, δι’ οὗ καὶ ἐποίησεν τοὺς αἰῶνας·

『이 모든 날(헤메론) 마지막(에스카투)에는 아들을 통하여(엔 휘오)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개역개정)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 분은 아들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연대와 만물을 상속자로 정하시고 만드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에스카투 톤 헤메론(ἐσχάτου τῶν ἡμερῶν)은 종말의 날을 의미한다. 종말의 날은 지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백보좌 심판을 기다리는 상태에 있는 날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엔 휘오(ἐν υἱῷ)는 아들 안에서 라는 의미다. 디(δι’)는 ~을 통하여 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구원에 대해서 구약시대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지만, 신약시대는 아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하신다.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호 로고스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ον εθηκεν κληρονομον παντων δι ου και τους αιωνας εποιησεν

그 분은 아들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연대와 만물을 상속자로 정하시고 만드셨느니라.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ἐπ’ ἐσχάτου τῶν ἡμερῶν τούτων ἐλάλησεν ἡμῖν ἐν υἱῷ, ὃν ἔθηκεν κληρονόμον πάντων, δι’ οὗ καὶ ἐποίησεν τοὺς αἰῶνας·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은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를 통하여 세상의 연대를 만드셨느니라.

넷슬 알란드 성경의 ἐπ’ ἐσχάτου τῶν ἡμερῶν τούτων ἐλάλησεν ἡμῖν ἐν υἱῷ, 이 부분은 스테파누스 성경의 1절에 포함되어 있다. 다만 스테파누스 성경의 τους αιωνας εποιησεν은 넷슬 알란드 성경 ἐποίησεν τοὺς αἰῶνας·과 문장의 단어 배열이 차이가 있다. 『만들다 창조하다』는 의미의 에포이에센(ἐποίησεν)이 τοὺς αἰῶνας·앞에 또는 뒤에 있다는 것이다. τοὺς αἰῶνας·는 세대, 일생, 연령, 연대로 번역될 수 있다. 이는 마지막 날들과 연관이 있는 단어이다. 


3절ὃς ὢν ἀπαύγασμα τῆς δόξης καὶ χαρακτὴρ τῆς ὑποστάσεως αὐτοῦ,φέρων τε τὰ πάντα τῷ ῥήματι τῆς δυνάμεως αὐτοῦ, καθαρισμὸν τῶν ἁμαρτιῶν ποιησάμενος ἐκάθισεν ἐν δεξιᾷ τῆς μεγαλωσύνης ἐν ὑψηλοῖς,

『이는(호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카락테르 휘포스타세오스)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페론 테 타 판타)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개역개정)

『그 분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며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고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후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는 그 분(그리스도)이라는 의미다. 그리스도는 다름 아닌 하나님 영광의 광채이시고,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형상이라고 번역된 것의 헬라어 카락테르 테스 휘포스타세오스(χαρακτὴρ τῆς ὑποστάσεως)는 본체 아래 서 있는 조각품이다. 조각품은 모형이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은 하나님 아래 서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성품이나 모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통해서 함께 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페론 테 타 판타(φέρων τε τὰ πάντα)』만물을 사역한다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아들 그리스도께서 세상 속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하기 전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하신 것을 두고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것이다. 그 사역하는 주된 임무가 죄를 정결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으로서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죄를 사하게 하시고,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고 한다. 


4절 τοσούτῳ κρείττων γενόμενος τῶν ἀγγέλων ὅσῳ διαφορώτερον παρ’ αὐτοὺς κεκληρονόμηκεν ὄνομα.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오노마)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개역개정)

『그분께서 천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셨으며 그들 보다 위에 계심은그가 이름을 상속받았음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이름도 함부러 부르지 못했으며, 항상 천사가 하나님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그래서 천사를 하나님 다음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분이 천사보다 뛰어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오노마는 이름(아들이라는 이름)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천사보다 영적으로 다 높다고 설명한다.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보기에 예수는 사람인데, 그리스도라고 하므로 잘 받아드려지지 않는 것이다. 


5절 Τίνι γὰρ εἶπέν ποτε τῶν ἀγγέλων· υἱός μου εἶ σύ, ἐγὼ σήμερον γεγέννηκά σε; καὶ πάλιν· ἐγὼ ἔσομαι αὐτῷ εἰς πατέρα, καὶ αὐτὸς ἔσται μοι εἰς υἱόν;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개역개정)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셨느냐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헬라어 번역성경)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기를 이 말은 시편 2장 7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천사에게 한 말이 아니지 않느냐 라는 것이다. 


6절ὅταν δὲ πάλιν εἰσαγάγῃ τὸν πρωτότοκον εἰς τὴν οἰκουμένην, λέγει·καὶ προσκυνησάτωσαν αὐτῷ πάντες ἄγγελοι θεοῦ.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개역개정)

『하나님께서 그 처음 나신 분을 다시 세상에 들어오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하라 하시고』(헬라어 번역성경)

이 말씀도 마태복음 25장 31절의 말씀을 인용하였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한글개역 개정은『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그런데, 헬라어를 보면 ὅταν δὲ πάλιν εἰσαγάγῃ τὸν πρωτότοκον εἰς τὴν οἰκουμένην, λέγει·καὶ προσκυνησάτωσαν αὐτῷ πάντες ἄγγελοι θεοῦ.밑줄친 부분의 번역이 잘못되었다.『그분께서 그 처음 나신 분(τὸν πρωτότοκον)을 다시 세상에 들어오게 하실 때에』그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 처음나신 분은 첫사람 아담(그리스도)이고, 세상에 다시 들어오는 자는 마지막 아담(그리스도)인 것이다. 


7절 καὶ πρὸς μὲν τοὺς ἀγγέλους λέγει· ὁ ποιῶν τοὺς ἀγγέλους αὐτοῦ πνεύματα καὶ τοὺς λειτουργοὺς αὐτοῦ πυρὸς φλόγα,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프뉴마타)으로, 그의 사역자(레이투르구스λειτουργοὺς)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개역개정)

『또 하나님께서 천사들에 관하여 이르시기를 자신의 천사들을 영들로 삼으시고 자신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프뉴마타(πνεύματα)는 영들이다. 레이투르구스(λειτουργοὺς)는 성전에서 일하는 사역자를 의미한다. 즉 천사들은 영들이며, 성전에서 일하는 사역자와 같은 그런 역할이라는 것이다. 천사들은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며, 아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8절 πρὸς δὲ τὸν υἱόν·ὁ θρόνος σου ὁ θεὸς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τοῦ αἰῶνος , καὶ ἡ ῥάβδος τῆς εὐθύτητος ῥάβδος τῆς βασιλείας σου.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수)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랍도스)는 공평한 규이니이다』(개역개정)

『하나님이여 당신의 보좌에 있는 아들은 영원하며 당신의 왕국에 있는 아들의 홀은 공평한 지팡이니이다.』(헬라어 번역성경)

주 라고 번역된 수(σου)는 당신이라는 말이다. 당신은 성부 하나님이다. 랍도스는 홀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며, 왕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의미한다. 이 말은 시편 45장 6절의 인용이다. 하나님의 보좌가 영원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이유는 바로 아들로 인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의 백성들이 바라볼 때,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의 상속자라는 것이다. 


9절ἠγάπησας δικαιοσύνην καὶ ἐμίσησας ἀνομίαν· διὰ τοῦτο ἔχρισέν σε ὁ θεὸς ὁ θεός σου ἔλαιον ἀγαλλιάσεως παρὰ τοὺς μετόχους σου.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수)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 하였고』(개역개정)

『당신은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당신의 하나님께서 즐거움으로 당신에게 기름을 부어 당신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이다 하시고』(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에서 당신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했다는 것이다. 의는 하나님과 연합되는 것을 의미하며, 불법은 하나님을 떠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중재자가 되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를 하나님이 불의한 자로 보시는 것이다. 

그리고 기름을 붓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기름부음』에 해당하는 신약성경 헬라어는 엘라이온(기름) 에크리센(~을 붓다)이다. 성경 시대에, 사람들은 기름을 바름으로써 그 사람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나 부르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출애굽기 29:7, 출애굽기 40:9, 열왕기하 9:6, 전도서 9:8, 야고보서 5:14). 사람은 특별한 목적, 즉 왕이 되거나 선지자가 되기 위해, 또는 건축자 등이 되기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 사람에게 기름 부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기름부음 받은 이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는 『선택받은 자』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죄에 포로 된 자들을 자유케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고 말씀한다 (누가복음 4:18-19, 사도행전 10:38).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을 떠나신 후에, 성도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셨다 (요한복음 14:16).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고, 선택받았다 (요한일서 2:20).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는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린도후서 1:21-22).

동류들은 천사들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천사들보다 훨씬 뛰어난 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천사들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도 아니고, 중보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10절 καί· σὺ κατ’ ἀρχάς, κύριε, τὴν γῆν ἐθεμελίωσας, καὶ ἔργα τῶν χειρῶν σού εἰσιν οἱ οὐρανοί·

『또 주여 태초에(캍 아르카스)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개역개정)

『그리고 당신은 주이신 우두머리의 질서에 따라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들은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이 부분은 주이신 성부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를 예정하시고, 그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무슨 사역을 하셨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그리스도)가 하늘의 빛을 막으시고 물질세계를 창조하셨다는 말이다. 캍 아르카스(κατ’ ἀρχάς)는 우두머리(리더)의 질서에 따라 라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가 창조주라는 의미다. 그리스도가 창조주인데,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까지 하셨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 6-10절의 말씀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12절 αὐτοὶ ἀπολοῦνται, σὺ δὲ διαμένεις, καὶ πάντες ὡς ἱμάτιον παλαιωθήσονται, καὶ ὡσεὶ περιβόλαιον ἑλίξεις αὐτούς, ὡς ἱμάτιον καὶ ἀλλαγήσονται· σὺ δὲ ὁ αὐτὸς εἶ καὶ τὰ ἔτη σου οὐκ ἐκλείψουσιν.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은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개역개정)

『그것들은 멸망하려니와 오직 당신은 여전히 계시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아질 것이며 당신께서 의복같이 그것들을 말아버리면 그것들은 변할 것이나 당신은 동일하시고 당신의 햇수는 끊어지지 아니하리이다』(헬라어 번역성경)

물질세계는 변하고 언젠가 사라질 것이나, 그리스도는 영원할 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그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육체는 세상의 물질로 되어있으므로 사라지며, 오직 영이 옷을 입은 영의 몸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옷을 갈아입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교회 사람들은 부활에 대해서, 육체가 그대로 다시 살아서 신비한 모습으로 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활은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처럼, 육의 몸을 벗고, 영의 몸으로 갈아입는 것을 의미한다. 


13절 πρὸς τίνα δὲ τῶν ἀγγέλων εἴρηκέν ποτε· κάθου ἐκ δεξιῶν μου, ἕως ἂν θῶ τοὺς ἐχθρούς σου ὑποπόδιον τῶν ποδῶν σου;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 (개역개정)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들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느냐』(헬라어 번역성경)

이는 시편 110장 1절의 말씀을 인용했다. 히브리서 기자가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들이 천사들에게 하지 않았다면 누구에게 한 것인가 묻고 있는 것이다. 바로 성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14절 οὐχὶ πάντες εἰσὶν λειτουργικὰ πνεύματα εἰς διακονίαν ἀποστελλόμενα διὰ τοὺς μέλλοντας κληρονομεῖν σωτηρίαν;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레이투르기카)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디아코니안) 보내심이 아니냐』(개역개정)

『모든 천사들은 구원과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해 섬기라고 보내어진 섬기는 영들이 아니냐』(헬라어 번역성경)

레이투르기카(λειτουργικὰ)는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는 의미다. 디아코니안(διακονίαν)은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는(봉사하는) 영이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천사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나타나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섬긴다는 것은 종처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기듯이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을 보면 이해가 간다. 천사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분이라는 것을 유대인들에게 인식시켜 주어서 그 분에 대해서 전하려 한 것이다. 


2장 

1-2절 Διὰ τοῦτο δεῖ περισσοτέρως προσέχειν ἡμᾶς τοῖς ἀκουσθεῖσιν, μήποτε παραρυῶμεν. εἰ γὰρ ὁ δι’ ἀγγέλων λαληθεὶς λόγος ἐγένετο βέβαιος καὶ πᾶσα παράβασις καὶ παρακοὴ ἔλαβεν ἔνδικον μισθαποδοσίαν,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개역개정)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지금까지 들은 것들이 우리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리니 천사들을 통해 하신 말씀이 확고하였고 모든 허물과 불순종이 정당한 보응의 대가를 받았거늘』(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이 천사들을 통하여 전한 말씀도 백성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3절 πῶς ἡμεῖς ἐκφευξόμεθα τηλικαύτης ἀμελήσαντες σωτηρίας, ἥτις ἀρχὴν λαβοῦσα λαλεῖσθαι διὰ τοῦ κυρίου ὑπὸ τῶν ἀκουσάντων εἰς ἡμᾶς ἐβεβαιώθη,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아르켄 라부사) 주로 말씀하신(랄레스타이 디아 투 퀴리우) 바요 들은 자들(휘포 톤 아쿠산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개역개정)

『우리가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그같이 큰 보응을 피할 수 있으리요 이 구원은 주를 우두머리로 받아드리며 주를 통해 말씀되어지고 그분의 말씀을 들은 자들에 의해 우리에게 확증한 것인데』(헬라어 번역성경)

천사를 통해서도 들은 말씀을 중히 여기는데, 말씀이신 호 로고스(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그 구원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되는가를 말하고 있다. 큰 구원은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 큰 구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성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도의 죽은 영을 깨우신다. 그리고, 성도의 영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영과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호 로고스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큰 구원이라는 것이다. 

아르켄 라부사(ἀρχὴν λαβοῦσα)는 우두머리(그리스도)를 받아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듣는 것이다.『랄레이스다이 디아 투 퀴리우λαλεῖσθαι διὰ τοῦ κυρίου』는 주님을 통하여 말하여지고, 『휘포 톤 아쿠산톤 ὑπὸ τῶν ἀκουσάντων 』은 들은 사람들에 의해 라는 말이다. 즉 그리스도가 우두머리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면, 우두머리(그리스도)를 통하여 말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으로 받아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듣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4절 συνεπιμαρτυροῦντος τοῦ θεοῦ σημείοις τε καὶ τέρασιν καὶ ποικίλαις δυνάμεσιν καὶ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μερισμοῖς κατὰ τὴν αὐτοῦ θέλησιν;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개역개정)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표적들과 이적들과 다양한 기적들과 성령의 선물들로 그들에 대하여 증언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호 로고스가 심령 가운데, 역사하는 성도는 표적과 기사들과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호 로고스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는 사역 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런 표적과 기사를 원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5-6절 Οὐ γὰρ ἀγγέλοις ὑπέταξεν τὴν οἰκουμένην τὴν μέλλουσαν, περὶ ἧς λαλοῦμεν.διεμαρτύρατο δέ πού τις λέγων· τί ἐστιν ἄνθρωπος ὅτι μιμνῄσκῃ αὐτοῦ, ἢ υἱὸς ἀνθρώπου ὅτι ἐπισκέπτῃ αὐτόν;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개역개정)

『그분은 다가오는 세상 곧 우리가 말하는 그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시키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헬라어 번역성경)

천사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증언하여 라는 말은 시편 8장 4-6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자는 부활하시기 전의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즉 사람이신 인자라는 것이다. 

7절ἠλάττωσας αὐτὸν βραχύ τι παρ’ ἀγγέλους, δόξῃ καὶ τιμῇ ἐστεφάνωσας αὐτό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개역개정)

『하나님께서 그를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만드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로 면류관을 씌우시며 (그를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 위에 세우시고)』(헬라어 번역성경)

예수님이 삼년 동안 공생애를 하는 동안은 천사보다 못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육체의 연약함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사역을 앞두고 기도를 할 때, 천사로부터 함을 얻는다. 누가복음 22장 42-43절에서『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ηλαττωσας αυτον βραχυ τι παρ αγγελους δοξη και τιμη εστεφανωσας αυτον και κατεστησας αυτον επι τα εργα των χειρων σου 

하나님께서 그를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만드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로 면류관을 씌우시며 그를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 위에 세우시고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ἠλάττωσας αὐτὸν βραχύ τι παρ’ ἀγγέλους, δόξῃ καὶ τιμῇ ἐστεφάνωσας αὐτόν,

하나님께서 그를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만드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로 면류관을 씌우시며 

넷슬 알란드 성경은 『그를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 위에 세우시고』이 부분이 없다.

8절 πάντα ὑπέταξας ὑποκάτω τῶν ποδῶν αὐτοῦ. ἐν τῷ γὰρ ὑποτάξαι [αὐτῷ] τὰ πάντα οὐδὲν ἀφῆκεν αὐτῷ ἀνυπότακτον. Νῦν δὲ οὔπω ὁρῶμεν αὐτῷ τὰ πάντα ὑποτεταγμένα·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개역개정)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두어 복종하게 하였으니 그분께서 모든 것을 그 아래 두어 복종하게 하셨은즉 그 아래 두지 아니하신 것이 하나도 없도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직 모든 것이 그 아래 놓인 것을 보지 못하고』(헬라어 번역성경)

비록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 전에는 천사보다 약하게 되었지만,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셨으므로, 모든 만물에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심령 속에 임재하는 호 로고스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교회 안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지도 않고, 그 분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9절 τὸν δὲ βραχύ τι παρ’ ἀγγέλους ἠλαττωμένον βλέπομεν Ἰησοῦν διὰ τὸ πάθημα τοῦ θανάτου δόξῃ καὶ τιμῇ ἐστεφανωμένον, ὅπως χάριτι θεοῦ ὑπὲρ παντὸς γεύσηται θανάτου.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개역개정)

『다만 그분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시려고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되셨다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을 우리가 보니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보다 못하게 되어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기 위해서이다. 즉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심판받고 죽어야 하는 존재들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죽음의 통로를 만드신 것이다. 그와 연합하여 죽은 자는 그도 하나님께 대하여 심판받고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심판받고 죽은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인 것이다. 믿지 않는 자는 죽지 않은 자라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음부에서 둘째 사망으로 죽어야 한다. 

10절Ἔπρεπεν γὰρ αὐτῷ, δι’ ὃν τὰ πάντα καὶ δι’ οὗ τὰ πάντα, πολλοὺς υἱοὺς εἰς δόξαν ἀγαγόντα τὸν ἀρχηγὸν τῆς σωτηρίας αὐτῶν διὰ παθημάτων τελειῶσαι.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톤 아르케콘)를 고난(파데마톤)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개역개정)

『모든 것이 그를 위하여 그리고 그에 의해서 존재하고 구원의 우두머리이신 그 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고난들을 통해 완전하게 이끌어 가심이 합당하도다.』(헬라어 번역성경)

톤 아르케곤(τὸν ἀρχηγὸν)은 우두머리(그리스도)라는 의미다. 파데마톤(παθημάτων)은 십자가의 고난을 의미한다. 즉 고난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순종은 창세 전에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예정하신 것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예정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셔서, 그 속에 범죄한 영들을 가두고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하시고, 인간들이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깨닫고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하여, 그도 죽은 자임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죽었던 영을 살려, 다시 하나님 나라의 옷을 입게 해 주시겠다는 그 계획 속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구원의 예정을 종말 때까지 하나씩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11절ὅ τε γὰρ ἁγιάζων καὶ οἱ ἁγιαζόμενοι ἐξ ἑνὸς πάντες· δι’ ἣν αἰτίαν οὐκ ἐπαισχύνεται ἀδελφοὺς αὐτοὺς καλεῖν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개역개정)

『거룩히 구별하시는 분과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으니 이러한 까닭에 그분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헬라어 번역성경)

거룩히 구별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거룩히 구별된 자들은 성도들을 의미한다. 한 근원은 성부 하나님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십자가에서 대속을 위해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인자라고 부르는데, 인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중보자로서 역할을 하므로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화해의 중보자로, 인간에게는 대속의 중보자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형제애와 같은 마음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생각하기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의미다. 

12절 λέγων· ἀπαγγελῶ τὸ ὄνομά σου τοῖς ἀδελφοῖς μου,

ἐν μέσῳ ἐκκλησίας ὑμνήσω σε,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토 오노마 수)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개역개정)

『이르시되 내가 당신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서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하시며』(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서『이르시되』는 시편 22편 22절의 말씀을 의미한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시편의 기자는 다윗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2장 12절에서 말하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토 오노마 수(τὸ ὄνομά σου)는 당신(성부 하나님)의 이름이다. 예수님이 형제들에게 성부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다. 개역개정에서 주라고 번역된 부분은 성부 하나님인지 예수 그리스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13절 καὶ πάλιν· ἐγὼ ἔσομαι πεποιθὼς ἐπ’ αὐτῷ, καὶ πάλιν· ἰδοὺ ἐγὼ καὶ τὰ παιδία ἅ μοι ἔδωκεν ὁ θεός.

『또 다시 내가 그를(아우토) 의지하리라(페로이도스)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개역개정)

『또 다시 내가 그분을 신뢰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나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을 보라 하시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이사야 8장 17-18절의 말씀을 인용하였다.『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이사야 8장 17-18절에서 나는 이사야를 의미한다. 그러나 히브리서 2장 13절의 말씀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아우토(αὐτῷ)는 성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이 전적으로 성부 하나님을 신뢰하니(페로이도스 πεποιθὼς),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셨다고 한다. 2장 12절에서는 성도를 형제라고 했는데, 여기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했다. 2장 12절에서 중보자(인자)로서 성도는 그리스도의 형제로 되어지지만, 2장 13절에서 중보자(하나님의 아들)로서는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아들)가 되는 것이다. 

14절Ἐπεὶ οὖν τὰ παιδία κεκοινώνηκεν αἵματος καὶ σαρκός, καὶ αὐτὸς παραπλησίως μετέσχεν τῶν αὐτῶν, ἵνα διὰ τοῦ θανάτου καταργήσῃ τὸν τὸ κράτος ἔχοντα τοῦ θανάτου, τοῦτ’ ἔστιν τὸν διάβολον,

『자녀들은 혈(하이마토스)과 육(사르코스)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개역개정)

『자녀들은 혈과 육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으로 참여하였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을 지배하는 자 곧 마귀를 멸하시려는 것이며』(헬라어 번역성경)

유대인의 혈통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하이마토스(αἵματος)는 유대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유대교에 대한 신앙(모태신앙)이 있음을 나타낸다. 사르코스(σαρκός)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종교심을 의미한다. 이 두가지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예수님도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므로 이 두가지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혈(모태신앙)과 육(종교심)으로 나타난 신앙은 영을 죽이는 결과로 나타난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미혹했으며, 하와는 선악과를 바라본즉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그녀는 선악과를 따먹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혈과 육으로 나타나는 종교심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을 죄로 생각한다. 이 생각들이 혈과 육으로 태어난 유대인들에게는 불변의 진리로 여겨졌다.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모든 것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혈과 육 속에 탐욕이 숨어있기 때문에 영이 죽는 것이다. 로마서 6장 4절에서는『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이 말은 육의 몸(탐욕)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의미다. 탐욕이 죽는 것은 사탄을 멸하는 것이다.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부활:거듭남)은 영이 살아나서 영의 몸을 입는 것이다. 

15절 καὶ ἀπαλλάξῃ τούτους, ὅσοι φόβῳ θανάτου διὰ παντὸς τοῦ ζῆν ἔνοχοι ἦσαν δουλείας.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포보 다나루)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개역개정)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종노릇해 왔던 자들을 건져 내려 하심이라.』(헬라어 번역성경)

포보 다나투(φόβῳ θανάτου)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혹시 영적으로 관계가 끊어지지 않을까 해서,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데, 결국 이 율법주의 행위는 율법의 종노릇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종노릇하는 자를 풀어준다는 말씀이다. 

16절 οὐ γὰρ δήπου ἀγγέλων ἐπιλαμβάνεται ἀλλὰ σπέρματος Ἀβραὰμ ἐπιλαμβάνεται.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앙겔론)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스페르마토스 아브라암σπέρματος Ἀβραὰμ)을 붙들어 주려(에피람바네타) 하심이라』(개역개정)

『진실로 그분께서는 천사가 소유한 자를 붙들어 주려고 하심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씨가 소유한 자를 붙들어 주려고 하심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앙겔론(ἀγγέλων)은 소유격이다. 스페르마토스(σπέρματος:씨의)는 자손이 아니라, 씨로서 역시 소유격이다. 문법적으로 헬라어의 소유격에서 수식하는 명사가 없을 때는 소유격이 대명사 역할을 한다. 즉 천사가 소유한 것, 아브라함의 씨가 소유한 것으로 번역된다. 아브라함의 씨는 아브라함과 같은 약속의 씨를 의미한다. 그래서『천사가 소유한 자를 붙들어 주려고 하심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씨가 소유한 자를 붙들어 주려고 하심이라』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에피람바네타이(ἐπιλαμβάνεται)는 붙잡는다 라는 의미다. 아브라함의 씨는 약속의 씨인 그리스도이시다. 천사가 소유한 자들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 계시를 받았는데, 이것을 두고 하나님이 계시한 것인양 미혹하는 것이다. 많은 유대인들은 천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17절ὅθεν ὤφειλεν κατὰ πάντα τοῖς ἀδελφοῖς ὁμοιωθῆναι, ἵνα ἐλεήμων γένηται καὶ πιστὸς ἀρχιερεὺς τὰ πρὸς τὸν θεὸν εἰς τὸ ἱλάσκεσθαι τὰς ἁμαρτίας τοῦ λαοῦ.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힐라스케스다이) 하심이라』(개역개정)

『그러므로 모든 일 안에서 그분께서 자기 형제들과 같게 될 필요가 있었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하나님께 관한 일들에 긍휼 많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이 되사 백성의 죄들에 대하여 화목을 이루려 하심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대속 제물로 오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부활하시어 대제사장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성부 하나님 보좌에 나아가셨다. 그래서 죄인들과 화목하는 것이다. 힐라스케스다이(ἱλάσκεσθαι)는 속량이 아니라 화목이다. 성전에서 대제사장은 1년에 한번 백성들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지성소에 들어가 동물의 피를 통해서 죄를 사하심을 받고, 하나님은 대제사장을 통해서 시은좌(힐라스테리온)에서 백성들과 화목하는 것이다. 

18절ἐν ᾧ γὰρ πέπονθεν αὐτὸς πειρασθείς, δύναται τοῖς πειραζομένοις βοηθῆσαι.

『그가 시험을 받아(엔 호) 고난(페폰덴)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개역개정)

『그가 수난에 대해서 마귀의 유혹을 받았으므로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울 수 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페폰덴(πέπονθεν)은 수난이다. 자발적으로 받는 고난을 의미한다. 엔호(ἐν ᾧ)는『그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지 말도록 마귀의 유혹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예정을 통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날, 인간으로서 십자가의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이다. 그 때 마귀가 생각으로 침입해서 유혹하는 것이다. 순간『할 수 있으면, 잔을 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그러나 다시 내 뜻대로 하지 말라고 기도를 수정하신다. 마귀는 유혹으로 그리스도의 예정을 파괴하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십자가로 나갔다. 


3장 

1절Ὅθεν, ἀδελφοὶ ἅγιοι, κλήσεως ἐπουρανίου μέτοχοι, κατανοήσατε τὸν ἀπόστολον καὶ ἀρχιερέα τῆς ὁμολογίας ἡμῶν Ἰησοῦν,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개역개정)

『그러므로 거룩한 형제들 곧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아 우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헬라어 번역성경)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를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과 성도가 친밀한 관계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여 함께 호흡하며, 함께 생각하고 대화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사도이며, 대제사장이면, 성도도 사도가 되며,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2절 πιστὸν ὄντα τῷ ποιήσαντι αὐτὸν ὡς καὶ Μωϋσῆς ἐν [ὅλῳ] τῷ οἴκῳ αὐτοῦ.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개역개정)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 안에서 신실했던 것 같이 그는 자기를 세우신 분에게 신실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일을 했지만, 예수님은 성부와 대면하는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3절 πλείονος γὰρ οὗτος δόξης παρὰ Μωϋσῆν ἠξίωται, καθ’ ὅσον πλείονα τιμὴν ἔχει τοῦ οἴκου ὁ κατασκευάσας αὐτόν·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개역개정)

『집을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 존귀한 것 같이 그는 모세보다 더 많은 영광을 받을 자로 인정받아왔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모세는 하나님 나라를 집으로 비교한다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지은 분이라는 것이다. 집에서 종으로 일하는 자와 집을 지어 주인으로 있는 자와 비교가 되겠는가 라고 히브리서 기자가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모세를 신처럼 떠받들고 있지만, 예수는 받아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4절 πᾶς γὰρ οἶκος κατασκευάζεται ὑπό τινος, ὁ δὲ πάντα κατασκευάσας θεός.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데오스)이시라』(개역개정)

『집마다 지은 자가 있으되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은 창조주이시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데오스(θεός) 앞에 장관사가 있으면, 성부 하나님이지만, 정관사가 없으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창조주)를 의미한다. 한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로 인해서, 이를 처리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예정하셨다.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시며, 보좌의 하나님도 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예정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물질세계를 창조하시고, 범죄한 천사들의 영을 물질세계에 넣고, 흙으로 사람 모양을 만들어, 그 영을 집어넣으므로, 사람이 되게 하고, 그 사람에게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시고, 그리고 회개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예정이다. 이 그리스도의 예정에 따라 하나님이 인간의 영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5절 καὶ Μωϋσῆς μὲν πιστὸς ἐν ὅλῳ τῷ οἴκῳ αὐτοῦ ὡς θεράπων εἰς μαρτύριον τῶν λαληθησομένων,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톤 랄레데소메논)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개역개정)

『또 모세는 장래에 말하게 될 그것들을 증언하기 위해 그분의 온 집 안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으며』(헬라어 번역성경)

톤 랄레데소메논(τῶν λαληθησομένων)은 장래에 세상에 태어나 십자가를 짊어지실 호 로고스에 대한 증언이다. 그 증언을 위해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 신실하게 일을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지자와 천사를 통해서 명령하셨다. 모세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모세가 선지자로 전하는 것은 모든 백성에게 말로 전달하므로,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호 로고스로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있으므로 확실하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6절 Χριστὸς δὲ ὡς υἱὸς ἐπὶ τὸν οἶκον αὐτοῦ· οὗ οἶκός ἐσμεν ἡμεῖς, ἐάν [περ] τὴν παρρησίαν καὶ τὸ καύχημα τῆς ἐλπίδος κατάσχωμεν.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엘피도스)의 확신(파르레시안)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개역개정)

『그리스도는 그분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그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분의 집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 일을 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엘피도스(ἐλπίδος)는 말씀이신 아들과 함께 하는 소망이다. 파르레시안(παρρησίαν)은 많은 말을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은 호 로고스의 집이다. 그래서 심령 속에서 하시는 호 로고스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소망을 자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7절 Διό, καθὼς λέγει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σήμερον ἐὰν τῆς φωνῆς αὐτοῦ ἀκούσητε,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개역개정)

『그러므로 거룩하신 성령께서 이르신 것 같이 오늘 만일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헬라어 번역성경)

오늘 다음에 헬라어 에안(ἐὰν)이라는 단어가 있다. 에안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만일 이라는 의미다. 호 로고스의 음성이 너희 심령 가운데 임재해서 듣거든 이라는 말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그들의 심령에 예수가 호 로고스로 임재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경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음성을 듣는 자가 있다면, 말씀을 붙잡아라는 것이다. 

8-9절 μὴ σκληρύνητε τὰς καρδίας ὑμῶν ὡς ἐν τῷ παραπικρασμῷ κατὰ τὴν ἡμέραν τοῦ πειρασμοῦ ἐν τῇ ἐρήμῳ, οὗ ἐπείρασαν οἱ πατέρες ὑμῶν ἐν δοκιμασίᾳ

καὶ εἶδον τὰ ἔργα μου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개역개정)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그때에 너희 조상들이 나를 시험하려고 하였고 (사십 년 동안) 내가 행한 일들을 보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 땅 앞에서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서 40일간 정탐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와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들어가면 죽는다 라고 전하므로 모든 백성들이 열 정탐꾼의 말을 믿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분노하시어 그들을 40년동안 광야로 돌게 했다. 그래서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자를 제외한 모든 백성들을 광야에서 죽게 했다. 이 기간 동안 백성들은 물과 식량이 부족하여 불평하고, 모세를 괴롭혔다. 그리고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나님을 시험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여러가지 표적을 나타내시었다. 하나님이 표적을 보여주신 이유는 열두 정탐꾼의 사건 당시 19세 이하의 아이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는 성도의 심령에 임재하는 말씀이신 호 로고스를 믿지 않는다. 책으로 되어있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읽고, 성령으로 감동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약에서의 언약의 하나님은 성도의 심령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의 하나님이시며, 그 분을 통해서 직접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다. 가로 막는 휘장이 찢어졌으므로 성도가 그리스도를 통과하여 직접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성도의 심령에 호 로고스가 없다면, 그들은 구약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인 것이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ου επειρασαν με οι πατερες υμων εδοκιμασαν με και ειδον τα εργα μου τεσσαρακοντα ετη

그때에 너희 조상들이 나를 시험하려고 하였고 사십 년 동안 내가 행한 일들을 보았느니라.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οὗ ἐπείρασαν οἱ πατέρες ὑμῶν ἐν δοκιμασίᾳ καὶ εἶδον τὰ ἔργα μου

그때에 너희 조상들이 나를 시험하려고 하였고 내가 행한 일들을 보았느니라. 

넷슬 알란드 성경은 40년이라는 기간이 없다. 

10절 τεσσεράκοντα ἔτη·διὸ προσώχθισα τῇ γενεᾷ ταύτῃ καὶ εἶπον· ἀεὶ πλανῶνται τῇ καρδίᾳ, αὐτοὶ δὲ οὐκ ἔγνωσαν τὰς ὁδούς μου,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플라논타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개역개정)

『그러므로 사십년 동안 내가 그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항상 잘못된 길로 인도되고 그들의 마음 속에는 내 길들을 알지 못하였도다 하였으며』(헬라어 번역성경)

백성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미혹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한다. 플라논타이는 잘못된 길로 인도되다 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백성들은 육신의 눈으로 가나안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육신의 생각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11절ὡς ὤμοσα ἐν τῇ ὀργῇ μου·εἰ εἰσελεύσονται εἰς τὴν κατάπαυσίν μου.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카타파우신)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개역개정)

『이에 내가 진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나니』(헬라어 번역성경)

카타파우신(κατάπαυσίν)은 일을 끝내고 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창조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말은 일을 끝내고 안식하셨다는 것이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안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범죄한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질세계를 창조하고, 사람을 만들고 하는 일을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여호와 하나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안식이다.  

역시 성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안식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안식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거듭나는 새창조에 해당된다. 그리고 거듭난 자가 심령안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 안으로 들어가며, 그래서 성도의 영이 호 로고스를 통과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되는 것이 안식이라는 말이다. 성도가 안식을 하기 위해서는 육의 생각을 내려놓고, 심령 안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 땅 앞에서 행한 것처럼, 육신의 생각대로 행하는 자들은 안식이 없는 것이다. 

12절 Βλέπετε, ἀδελφοί, μήποτε ἔσται ἔν τινι ὑμῶν καρδία πονηρὰ ἀπιστίας ἐν τῷ ἀποστῆναι ἀπὸ θεοῦ ζῶντος,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개역개정)

『형제들아 너희 중에 누군가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이 있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생기지 아니하도록 조심하라.』(헬라어 번역성경)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은 심령 중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의 말씀을 믿지 않고, 육의 생각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그 곳에 가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심령 안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를 만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교회 건물에 가서 기록된 성경을 읽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받아드리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로 타락하게 된다. 

13절ἀλλὰ παρακαλεῖτε ἑαυτοὺς καθ’ ἑκάστην ἡμέραν, ἄχρις οὗ τὸ σήμερον καλεῖται, ἵνα μὴ σκληρυνθῇ τις ἐξ ὑμῶν ἀπάτῃ τῆς ἁμαρτίας–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개역개정)

『그러나 날마다 서로 권면하되 오늘 동안 너희 가운데 아무도 죄의 미혹을 통해 강팍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하라.』(헬라어 번역성경)

심령 중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는 삶이다. 그래서 매일 매일 자신을 점검하라는 것이다. 

14절 μέτοχοι γὰρ τοῦ Χριστοῦ γεγόναμεν, ἐάνπερ τὴν ἀρχὴν τῆς ὑποστάσεως μέχρι τέλους βεβαίαν κατάσχωμεν–

『우리가 시작할(아르켄)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개역개정)

『우리가 우리의 보증인 우두머리를 끝까지 확고히 붙들면 그리스도께 참여한 자들이 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아르켄(ἀρχὴν)은 시작이 아니라, 우두머리(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우두머리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말씀이신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 안에 임재하는 것을 확신하고 끝까지 잡아라는 의미다. 

15절ἐν τῷ λέγεσθαι·σήμερον ἐὰν τῆς φωνῆς αὐτοῦ ἀκούσητε, μὴ σκληρύνητε τὰς καρδίας ὑμῶν ὡς ἐν τῷ παραπικρασμῷ.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개역개정)

『성경에 이르시되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게 하던 때에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하셨으니』(헬라어 번역성경)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들으면, 그의 음성에 순종해야만 한다. 

16-17절 τίνες γὰρ ἀκούσαντες παρεπίκραναν; ἀλλ’ οὐ πάντες οἱ ἐξελθόντες ἐξ Αἰγύπτου διὰ Μωϋσέως; τίσιν δὲ προσώχθισεν τεσσεράκοντα ἔτη; οὐχὶ τοῖς ἁμαρτήσασιν, ὧν τὰ κῶλα ἔπεσεν ἐν τῇ ἐρήμῳ;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개역개정)

『듣고 격노하게 만든 자가 누구냐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그러면 사십 년 동안 그분께서 누구로 인해 분개하셨느냐 죄를 지어 광야에 쓰러진 범죄한 자들이 아니냐』(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를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자라고 다시 상기시킨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기록된 책에서 찾으려고 하므로, 육의 생각대로 반응하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지 않고, 오직 구약성경에서 율법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 만이 그들의 유일신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율법 속에 감추어진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율법주의로 빠지므로, 그들에게는 예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18절 τίσιν δὲ ὤμοσεν μὴ εἰσελεύσεσθαι εἰς τὴν κατάπαυσιν αὐτοῦ εἰ μὴ τοῖς ἀπειθήσασιν;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개역개정)

『또 그분께서 누구에게 맹세하사 자신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느냐 오직 순종하지 않은 자들이 아니냐』(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에서 말하는 안식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가나안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런즉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육적인 것이 죽지 않으면, 호 로고스의 말씀에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19절 καὶ βλέπομεν ὅτι οὐκ ἠδυνήθησαν εἰσελθεῖν δι’ ἀπιστίαν.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개역개정)

『그러므로 그들이 믿지 아니하여 들어가지 못한 것을 우리가 아노라.』(헬라어 번역성경)

믿음은 출애굽한 백성들이 가나안 땅 앞에서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하는데, 믿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 당시로 가면, 하나님이 율법과 온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해 주시겠다고 하는데, 그 말씀을 안믿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생각으로 내가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므로, 그 심령 가운데, 호 로고스가 임재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거듭난 성도는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 성령의 능력으로 호 로고스를 영접하는 것이다. 

4장 

1절 Φοβηθῶμεν οὖν, μήποτε καταλειπομένης ἐπαγγελίας εἰσελθεῖν εἰς τὴν κατάπαυσιν αὐτοῦ δοκῇ τις ἐξ ὑμῶν ὑστερηκέναι.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포베도멘)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에포테)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휘스테레케나이) 있을까(도케) 함이라』 (개역개정)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만일 그분의 안식에 들어가는 약속이 남아있지 않다면 너희 중에 누군가가 안식에 미치지 못한 것을 보여주였기 때문이라.』(헬라어 번역성경)

포베도멘(Φοβηθῶμεν)은 경외하다 라는 의미다. 메포테(μήποτε)는 『만일 ~가 아니라면』이다. 휘스테레케나이(ὑστερηκέναι)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도케는 보여지다 라는 의미다. 『만일 안식에 들어가는 약속이 남아있지 않다면, 너희 중에 누군가가 안식에 미치지 못한 것을 보여주였기 때문이다.』라고 수정된다. 안식에 들어가는 약속이 없다는 것은 안식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자라는 것이다.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있었지만, 들어가지 못한 자도 있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안식에 들어갈 자격이 있으면 누구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이유는 출애굽과 관련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출애굽이 구원이었는데, 믿음이 부족하여 가나안에 못들어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이 구원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원래부터 자격이 없는 자라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출애굽할 당시부터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다. 즉 옛사람은 다 죽은 것이다. 오직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새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된다. 거듭난 자는 물에서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자라는 것이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라는 잘못된 이신칭의가 바로 광야에서 죽은 옛사람인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호로고스가 성도의 심령 안에서 임재하는 자가 바로 새사람인 것이다. 

2절 καὶ γάρ ἐσμεν εὐηγγελισμένοι καθάπερ κἀκεῖνοι· ἀλλ’ οὐκ ὠφέλησεν ὁ λόγος τῆς ἀκοῆς ἐκείνους μὴ συγκεκερασμένους τῇ πίστει τοῖς ἀκούσασιν.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호 로고스)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쉼케케라스메누스) 아니함이라』(개역개정)

『우리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으나 전해진 그 말씀이 들은 자들 속에서 믿음과 섞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함께 말씀을 듣고 믿었는데, 누구는 안식에 들어가고, 누구는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들은 말씀(호 로고스:그리스도)이 믿음으로 결부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호 로고스가 심령 안에서 임재하고, 그것을 깨닫는 자가 그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들을 때, 그에 따라 반응하는 자가 들음과 믿음이 결부되는 것이다. 쉼케케라스메누스는 함께 섞이다 라는 의미다. 반응하는 것은 함께 섞이는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듣지 않으면(건성으로 들으면), 호 로고스의 음성인지 아닌지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들으면, 믿음과 결부되어 반응하게 된다. 

3절 Εἰσερχόμεθα γὰρ εἰς [τὴν] κατάπαυσιν οἱ πιστεύσαντες, καθὼς εἴρηκεν·ὡς ὤμοσα ἐν τῇ ὀργῇ μου·

εἰ εἰσελεύσονται εἰς τὴν κατάπαυσίν μου, καίτοι τῶν ἔργων ἀπὸ καταβολῆς κόσμου γενηθέντων.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카타블레스)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개역개정)

『이미 믿은 우리는 그 안식에 들어가나니 이것은 창세로부터 그 일들이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출애굽한 그들에게 노하여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 그렇게 맹세하였으나 우리와 같이 이미 믿은 그들은 나의 안식에 들어올 것이라 하였으며』(헬라어 번역성경)

우리들은 예수님의 제자 무리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 번역상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노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시편 95편 11절을 인용했는데, 히브리서 기자가 앞부분은 그대로 인용했지만, 뒷부분은 다르게 표현했다. 『그가(하나님)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하나님)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이 부분은 그대로 하고, 뒷 부분은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는 부분을 다르게 말했는데, 우리말 번역자들이 시편 95편 11절과 동일하게 번역해버린 것이다. 

헬라어 원본은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었는가?『Εἰ(에이: 비록)εἰσελεύσονται(에이셀류손타이: 그들이 들어올 것이라)εἰς (에이스:안으로)τὴν(텐:그) κατάπαυσίν(카타파우신:안식을)μου(무:나의)』그들(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나의 안식에 들어올 것이다 라는 것이다. 

앞부분은 출애굽할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으나, 뒷부분은 유대 기독교인들에게 하는 말이다. 하나님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지만, 초대교회 당시 유대 그리스도인에게는 안식에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 구원이 이미 창세 전에 예정되었다는 것이다. 예정이란 어떤 특정인만을 예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그리스도)은 모든 자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라는 것이다. 

4-5절 εἴρηκεν γάρ που περὶ τῆς ἑβδόμης οὕτως· καὶ κατέπαυσεν ὁ θεὸς ἐν τῇ ἡμέρᾳ τῇ ἑβδόμῃ ἀπὸ πάντων τῶν ἔργων αὐτοῦ,καὶ ἐν τούτῳ πάλιν· εἰ εἰσελεύσονται εἰς τὴν κατάπαυσίν μου.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에이셀류손타이) 하였으니』(개역개정)

『그분께서는 일곱째 날과 관련한 어떤 곳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사역에서 떠나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며 다시  저희들에게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으나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올 것이라 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에이셀류손타이(εἰσελεύσονται)는 (안식에)들어올 것이다 라는 것으로, 번역의 오류다. 영어 niv 성경도 들어오지 못한다 라고 되어 있으나, kjv는 헬라어 원본과 같이 들어올 수 있다로 되어 있다. 우리말 성경이 niv를 토대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4장 3절과 연계시켜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에이(not)와 엘류손타이를 연계헤서 번역흐므로 오류가 생긴 것이다. 에이는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을 의미한다. 

6절ἐπεὶ οὖν ἀπολείπεται τινὰς εἰσελθεῖν εἰς αὐτήν, καὶ οἱ πρότερον εὐαγγελισθέντες οὐκ εἰσῆλθον δι’ ἀπείθειαν,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개역개정) 

『그러므로 어떤 유대인들은 그 안식에 들어가는 일이 남아 있는 줄을 알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출애굽한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나니』(헬라어 번역성경)

앞부분은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에 들어갈 자들이 있다는 말이고, 뒷부분의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출애굽 당시 순종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이다. 

7절 πάλιν τινὰ ὁρίζει ἡμέραν, σήμερον, ἐν Δαυὶδ λέγων μετὰ τοσοῦτον χρόνον, καθὼς προείρηται·σήμερον ἐὰν τῆς φωνῆς αὐτοῦ ἀκούσητε, μὴ σκληρύνητε τὰς καρδίας ὑμῶν.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카도스 프로에이레타이)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개역개정)

『그분께서 다윗의 글에서 오늘이라 미리 말씀하신 것 같이 다시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이 어떤 날을 정하시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 하셨나니』(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서 『오랜 후에』는 오랜 세월이 지나간 것 같이 라는 의미다. 카도스 프로에이레타이는 『미리 말씀하였던 것 같이』라는 말이다. 앞의 오늘은 모세가 말하는 당시의 그 때이고, 뒷부분은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그때인 것이다.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만일 듣는다면 귀담아 잘 듣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완고하지 말라는 말은 순종하라는 의미다. 

8-9절 εἰ γὰρ αὐτοὺς Ἰησοῦς κατέπαυσεν, οὐκ ἂν περὶ ἄλλης ἐλάλει μετὰ ταῦτα ἡμέρας. ἄρα ἀπολείπεται σαββατισμὸς τῷ λαῷ τοῦ θεοῦ.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개역개정)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뒤에 다른 날을 말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일이 남아 있도다.』(헬라어 번역성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안식의 예표(그림자)다. 그 자체가 안식은 아니라는 말이다. 가나안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말인 것이다. 안식의 주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하고 있다. 안식일이 있다는 말은 아직 안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안식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늘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안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는데, 유대인들처럼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0-11절ὁ γὰρ εἰσελθὼν εἰς τὴν κατάπαυσιν αὐτοῦ καὶ αὐτὸς κατέπαυσεν ἀπὸ τῶν ἔργων αὐτοῦ ὥσπερ ἀπὸ τῶν ἰδίων ὁ θεός. Σπουδάσωμεν οὖν εἰσελθεῖν εἰς ἐκείνην τὴν κατάπαυσιν, ἵνα μὴ ἐν τῷ αὐτῷ τις ὑποδείγματι πέσῃ τῆς ἀπειθείας.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개역개정)

『그분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그치신 것 같이 그도 자기 일을 그쳤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쓸지니 이것은 아무도 불순종하여 넘어진 본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헬라어 번역성경)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출애굽기 31장 15절의 말씀을 근거로 안식을 구원과 관계없고, 단지 쉬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쉬는 것을 공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 백성 중 안식일에 나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잡아서 모세 앞에 데려오게 되었는데, 민수기 15장 32-36절에서『하나님이 반드시 돌로 쳐죽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구원과 절대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건 가나안 땅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그림자이다. 참 안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다는 말이다. 참 안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이 바로 참 안식이다. 하나님이 참 안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안식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자는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이다. 『순종하지 않는 본』은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지 않은 자들이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해주겠다고 하는데,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자들이다. 

12절 Ζῶν γὰρ ὁ λόγος τοῦ θεοῦ καὶ ἐνεργὴς καὶ τομώτερος ὑπὲρ πᾶσαν μάχαιραν δίστομον καὶ διϊκνούμενος ἄχρι μερισμοῦ ψυχῆς καὶ πνεύματος, ἁρμῶν τε καὶ μυελῶν, καὶ κριτικὸς ἐνθυμήσεων καὶ ἐννοιῶν καρδίας·

『하나님의 말씀(호 로고스)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크리티코스 엔뒤메세온)과 뜻(엔노이온 카르디아스)을 판단하나니』(개역개정)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의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 그리고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며』(헬라어 번역성경)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다. 헬라어로 하나님 말씀은 로고스와 레마가 있는데, 사람들은 로고스는 성경에서 글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레마는 그 글을 읽고, 성령으로 감동되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레마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고,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호 로고스(ὁ λόγος)는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호 로고스의 말씀이 성도의 심령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혼과 영을 대조시키고, 관절과 골수를 대조시키며, 생각과 뜻을 대조시킨다. 앞 부분은 육으로 비롯된 것, 뒤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을 의미한다. 크리티코스 엔뒤메세온(κριτικὸς ἐνθυμήσεων)은 판단할 수 있는 생각, 엔노이온 카르디아스는 마음의 생각이다. 

13절 καὶ οὐκ ἔστιν κτίσις ἀφανὴς ἐνώπιον αὐτοῦ, πάντα δὲ γυμνὰ καὶ τετραχηλισμένα τοῖς ὀφθαλμοῖς αὐτοῦ, πρὸς ὃν ἡμῖν ὁ λόγος.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개역개정)

『그분 앞에 숨겨진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그 분은 우리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이시니라』(헬라어 번역성경)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만물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예정으로 그 예정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예정에 담긴 내용은 크게 세가지를 담고 있다. 범죄한 사탄과 천사들을 어떻게 가두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고, 최후에 심판하실 것인가 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옷을 벗겨 물질세계 속에 영을 가두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자들은 영이 육체라는 감옥에 갇히는 자가 되는 것이다. 

구원은 여인의 후손에 대한 언약과 희생제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을 정리해보면, 여인의 후손과 희생제사에 대해서 구전으로, 몸에 표시하는 할례로, 성경 말씀(율법)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신도들의 순교의 죽음으로, 신도의 심령에 있는 사탄을 무저갱에 넣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심령에 재림하는 방법으로 그리고 다시 사탄을 잠깐 풀어주는 방법으로 하신다. 모든 사람들이 호로고스를 받아드리나 결국 사탄에 미혹당하는 자와 끝까지 그리스도를 붙잡는 자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백보좌 심판을 할 것이다. 여러 단계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는 음부에 들어가며, 하나님께서 음부에 들어간 자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리고 물질세계는 완전히 사라지고,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안식을 얻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그리스도의 예정(계획)이며, 오늘도 그 예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14절Ἔχοντες οὖν ἀρχιερέα μέγαν διεληλυθότα τοὺς οὐρανούς, Ἰησοῦν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κρατῶμεν τῆς ὁμολογίας.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뒤엘렐리도타 투스 우라누스)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호몰로기아스)』 (개역개정)

『그러므로 우리에게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심령 속의 하늘들을 통과하여 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계시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붙들자.』(헬라어 번역성경)

디엘렐뤼도타 투스 우라누스(διεληλυθότα τοὺς οὐρανούς)는 그 하늘들을 통과하여 가신 이라는 의미다. 투스(τοὺς정관사 그) 우리누스(οὐρανούς하늘들)에서 하늘들(복수)은 성도들 각 사람마다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하늘은 복수(하늘들)로 사용된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네가지로 사용되는데, 단수 하늘, 복수 하늘, 관사가 붙은 단수 하늘, 관사가 붙은 복수 하늘이 있다. 단수 하늘은 눈에 보이는 하늘이다. 관사가 있는 단수 하늘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관사가 없는 하늘들은 교회공동체를 의미한다. 관사가 있는 하늘들은 성도들의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승천했다는 말은 성도의 각 사람의 심령 속으로 들어온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호몰로기아스는 신앙고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붙잡는 것이다. 

15절 οὐ γὰρ ἔχομεν ἀρχιερέα μὴ δυνάμενον συμπαθῆσαι ταῖς ἀσθενείαις ἡμῶν, πεπειρασμένον δὲ κατὰ πάντα καθ’ ὁμοιότητα χωρὶς ἁμαρτίας.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페페이라스메논)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개역개정)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것에서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미혹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페페이라스메논(πεπειρασμένον)은 마귀의 유혹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호 로고스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성도를 보좌의 하나님께 중보하신다. 

16절 προσερχώμεθα οὖν μετὰ παρρησίας τῷ θρόνῳ τῆς χάριτος, ἵνα λάβωμεν ἔλεος καὶ χάριν εὕρωμεν εἰς εὔκαιρον βοήθειαν.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유카이론 보헤데이안)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드로노 테스 카르테스) 앞에 담대히(메타 파르레시아) 나아갈 것이니라』 (개역개정)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적시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심령 속 임재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의 보좌와 그리스도의 임재하시는 보좌가 있다. 드로노 테스 카리토스(θρόνῳ τῆς χάριτος)는 그리스도의 임재의 보좌를 의미한다.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메타 파르레시아는 많은 말을 가지고 라는 의미다. 심령 속에 주님께 많은 말로 여쭈어 보라는 것이다. 유카이론 보헤데이안(εὔκαιρον βοήθειαν)은 적시에 돕는다는 의미다. 헬라어 원문은 유카이론 보헤데이안이 문장의 끝 부분에 있다. 


5장 

1-2절 Πᾶς γὰρ ἀρχιερεὺς ἐξ ἀνθρώπων λαμβανόμενος ὑπὲρ ἀνθρώπων καθίσταται τὰ πρὸς τὸν θεόν, ἵνα προσφέρῃ δῶρά τε καὶ θυσίας ὑπὲρ ἁμαρτιῶν, μετριοπαθεῖν δυνάμενος τοῖς ἀγνοοῦσιν καὶ πλανωμένοις, ἐπεὶ καὶ αὐτὸς περίκειται ἀσθένειαν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개역개정)

『사람들 가운데서 취한 대제사장마다 하나님께 속한 일들 안에서 사람들을 위하여 임명을 받나니 이것은 죄들로 인해 예물과 희생물을 그가 드리게 하려 함이라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불쌍히 여길 수 있음은 그 자신도 연약함에 싸여 있기 때문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에서 대제사장은 아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제사장도 연약한 자라는 것이다. 그가 연약하므로,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용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인 대제사장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죄가 없는 자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같은 그런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3절 καὶ δι’ αὐτὴν ὀφείλει, καθὼς περὶ τοῦ λαοῦ, οὕτως καὶ περὶ αὐτοῦ προσφέρειν περὶ ἁμαρτιῶν.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개역개정)

『이런 까닭에 그가 백성을 위하여 죄들로 인한 속죄제물을 드리는 것 같이 자신을 위하여도 드려야 함이 마땅하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대제사장은 속죄제를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드리고, 그리고 자신을 위해 제사를 드린다. 대제사장은 향로를 취하여 여호와 앞 단 위에서 피운 불을 채우고, 두 손에는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채워서 지성소에 들어간다(레 16:12).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움으로 대제사장 자신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레 16:13). 분향하는 연기로 속죄소를 가리운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를 대면하여 볼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나타낸다.

4절καὶ οὐχ ἑαυτῷ τις λαμβάνει τὴν τιμὴν ἀλλὰ καλούμενος ὑπὸ τοῦ θεοῦ καθώσπερ καὶ Ἀαρών.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개역개정)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며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수 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이러한 대제사장 직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대제사장 직을 하게 되는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5절 Οὕτως καὶ ὁ Χριστὸς οὐχ ἑαυτὸν ἐδόξασεν γενηθῆναι ἀρχιερέα ἀλλ’ ὁ λαλήσας πρὸς αὐτόν· υἱός μου εἶ σύ, ἐγὼ σήμερον γεγέννηκά σε·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개역개정)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영화롭게 하여 대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시고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신 그분께서 그에게 그리되게 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의 아들이 되므로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예정에 따라 대제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예정 중에는 예수님이 비천한 곳에서 태어나시고, 낮아지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다시 그리스도의 자리로 돌아간 분이다. 원래 여호와 하나님은 한분이시나, 스스로 그리스도가 되고 보좌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보좌의 하나님(성부)께 순종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에 대해서 성부가 택하신 아들처럼, 그는 철저히 성부 하나님께 순종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아론처럼 택하여진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 

6절 καθὼς καὶ ἐν ἑτέρῳ λέγει· σὺ ἱερεὺς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κατὰ τὴν τάξιν Μελχισέδεκ,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개역개정)

『또한 그분께서 다른 곳에서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심과 같으니라.』(헬라어 번역성경)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 있지만,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라는 말이다. 창세기 14장 14절에서, 전쟁이 일어나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해준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그래서 아브라함은 롯을 구하고 멜기세덱을 만나게 된다. 창세기 14장 17-18절에서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의 골짜기로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싸워서 이기고, 또 영적 형제를 구출한 아브라함에게 멜기세덱이 나타나신 것이다. 

역대기 상에는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후보자가 24명 중 1-2명이었다.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추첨으로 당선되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멜기세덱은 멜기(왕)와 세덱(의)이라는 합성어다. 『의의 왕이』라는 뜻이다. 멜기세덱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루살렘도 예루(도시)와 살렘(평화)의 합성어다. 멜기세덱은 살렘이라는 도시의 왕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의의 왕으로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에서 멜기세덱처럼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누가복음 22장 20절에서『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살을 먹고(죽음과 연합되고), 피를 마시는(보혈로 죄 사하심을 얻는)자가 거듭난 자인 것이다. 거듭난 자가 새언약을 붙잡는다. 

7절ὃς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τῆς σαρκὸς αὐτοῦ δεήσεις τε καὶ ἱκετηρίας πρὸς τὸν δυνάμενον σῴζειν αὐτὸν ἐκ θανάτου μετὰ κραυγῆς ἰσχυρᾶς καὶ δακρύων προσενέγκας καὶ εἰσακουσθεὶς ἀπὸ τῆς εὐλαβείας,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개역개정)

『그는 친히 육체로 거하는 동안에 자기를 사망으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크게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고 그분의 말씀을 붙잡았으므로 하나님께서 들으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님은 십자가 사역을 앞두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땀이 피가 될 정도로 기도와 간구를 했다. 이 잔을 내게서 떠나가게 해 달라고 할 정도로 마음의 고통이 심했던 것이다. 순간 마귀의 유혹을 받았지만, 본래의 그리스도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부분은 우리가 다 아는 바다.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에이사쿠스데이스 아포 테스 율라베이아스εἰσακουσθεὶς ἀπὸ τῆς εὐλαβείας)』로 번역된 것을 보면, 에이사쿠스데이스는 말씀을 듣고 안으로, 아포는 ~로 부터, 테스는 정관사 그, 율라베이아스는 잘 붙잡는 것이다. 예수님이 순간 마귀의 유혹이 있었지만, 성부의 말씀(십자가를 져야한다는)을 붙잡고, 그의 말씀 안으로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였기 때문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 되어, 성도들을 도우실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도도 마귀의 시험에 취약하다. 주님이 이렇게 경험을 했으므로 대제사장이 되어 성도들을 도울 수 있다고 히브리서 기자가 말을 하는 것이다. 

8-9절 καίπερ ὢν υἱός, ἔμαθεν ἀφ’ ὧν ἔπαθεν τὴν ὑπακοήν, καὶ τελειωθεὶς ἐγένετο πᾶσιν τοῖς ὑπακούουσιν αὐτῷ αἴτιος σωτηρίας αἰωνίου,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개역개정)

『그분께서 아들이실지라도 친히 수난 받으신 일들로 말미암아 순종하기를 배우사 완전하게 되셨으므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책임자가 되시고』(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서 자기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수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순종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었다. 100세가 되어서 육의 눈으로는 불가능함을 그는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쳐라는 주의 명령에 순종한 것이다. 

10-11절 προσαγορευθεὶς ὑπὸ τοῦ θεοῦ ἀρχιερεὺς κατὰ τὴν τάξιν Μελχισέδεκ. Περὶ οὗ πολὺς ἡμῖν ὁ λόγος καὶ δυσερμήνευτος λέγειν, ἐπεὶ νωθροὶ γεγόνατε ταῖς ἀκοαῖς.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혜민 호 로고스)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노드로이) 설명하기 어려우니라』(개역개정) 

『하나님에 의해 멜기세덱 계보에 따른 대제사장이라 불리셨느니라 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말할 것이 많으나 너희가 듣고 깨닫는 것이 늦으므로 이해시키기가 어려우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혜민 호 로고스(ἡμῖν ὁ λόγος)는 우리가 할말이 많은 것이 아니라, 호 로고스인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다. 즉 멜기세덱이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노드로이(νωθροὶ)는 늦다 라는 의미다. 듣는 것이 느리다는 것은 건성으로 듣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듣는 자들이 건성으로 들으므로 멜기세덱에 대해서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멜기세덱에 대해서 호 로고스의 말씀을 귀담아 좀 잘 들어라는 것이다. 

아론의 반차와 멜기세덱의 반차(계열의 순서)를 비교하여 보면, 

먼저 아론의 반차는 모세 때 옛 언약의 제사를 지내는 규례와 법도대로 진행되는 반열을 가리킨다. 아론이 레위 지파임으로 아론의 반차를 가리켜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레위의 반차)이라고도 한다. 출애굽 한 후에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았고 십계명을 보관하기 위한 성소를 만들었다. 그 때 성소에서 하나님께 제사의 일을 맡은 대제사장은 모세의 형인 아론이었고, 모세와 아론이 속한 레위 지파에게는 성소에서 제사의 직무가 맡겨졌다. 성소에서 레위 지파인 제사장들이 죄 사함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양이나 염소 등의 짐승을 제물로 삼았다. 아론의 반차는 성소에서 제사를 드릴 때 적용되던 제사장의 반열이다. 아론의 때로부터 레위의 후손들(레위 지파)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새 언약을 세우시기까지 15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지상 성소에서 제사장의 명맥(아론의 반차)을 이어 내려왔다.

멜기세덱의 반차에 대해서 보면, 성경(히브리서 6장 20절)은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표현하고 있다. 멜기세덱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시기 2000년 전인 아브라함 시대 때의 인물로서 그리스도를 표상한 인물이다. 구약 성경에는 단 두 군데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인물로, 아브라함 당시 살렘 왕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 제사장이 되었는지 ,그리고 살렘이 어느 지방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이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하기 위한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왔을 때 아브라함을 축복하기 위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던 인물이다. 이 멜기세덱을 가리켜 성경(창세기 14장 17-20절)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기록하였다.

아브라함 당시에는 구전에 의한 전통을 따라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드렸다. 그런데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린 것이다. 시편 110편에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시기 약 1100년 전에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성령에 감동을 받아, 장차 주(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 되실 것을 예언하였다. 마태복음 22장 41-45절에서는 시편에 다윗이 말한 주를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라고 해석해 주셨다. 다윗은 그리스도께서 장차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실 것을 예언했고, 여호와께서는 반드시 이루실 것을 맹세로 약속하셨다. 실제로,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빌어주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떡과 포도주로 영생의 복을 빌어주셨다.(마태복음 26장 17-28절)

하나님께서는 1500년 이상이나 내려온 제사 반열인 아론의 반차 대신에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을 세우셨다. 성소에서의 아론의 반차를 좇은 제사는 장차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것에 대한 모형으로서

영원한 대속의 죄가 아닌 것이다. 아론의 반차는 양과 염소 등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린 제사장 반열이었으며, 멜기세덱의 반차는 떡과 포도주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 반열이었다. 떡은 예수의 살(십자가에서 죽음), 포도주는 예수의 피로서 죄를 영원히 대속하는 의미를 갖는다. 성도들이 떡과 포도주를 마시는 이유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 그 분과 연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단번에 죄사함심을 얻는 것이다. 원죄만 용서받고, 세상죄는 죄사하심을 받지 않았다고 믿는 자들도 있으나,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죽지 않은 자들이다. 

12절 καὶ γὰρ ὀφείλοντες εἶναι διδάσκαλοι διὰ τὸν χρόνον, πάλιν χρείαν ἔχετε τοῦ διδάσκειν ὑμᾶς τινὰ τὰ στοιχεῖα τῆς ἀρχῆς τῶν λογίων τοῦ θεοῦ καὶ γεγόνατε χρείαν ἔχοντες γάλακτος [καὶ] οὐ στερεᾶς τροφῆς.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톤 로기온)의 초보에 대하여(타 스토이케이아 테스 아르케)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개역개정)

『시간적으로 너희가 마땅히 가르치는 자가 되었어야 할 터이나 너희는 하나님 말씀들의 첫째되는 원리를 남에게 다시 배워야 할 필요가 있나니 너희가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었도다.』(헬라어 번역성경)

톤 로기온(τῶν λογίω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들이다. 레마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고, 로고스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타 스토이케이아 테스 아르케스τὰ στοιχεῖα τῆς ἀρχῆς 』는 하나님 말씀들의 첫째되는 원리를 의미한다. 그들이 선생이 되어야 할텐데, 말씀들의 첫째되는 원리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 첫째 되는 말씀의 원리는 바로 호 로고스라는 것이다. 

13절 πᾶς γὰρ ὁ μετέχων γάλακτος ἄπειρος λόγου δικαιοσύνης, νήπιος γάρ ἐστιν·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디카이오쉬네스)의 말씀(로구)을 경험하지 못한(아페이로스) 자요』(개역개정)

『젖을 먹는 자마다 갓난아이이므로 의의 말씀에 숙련되지 못하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로구 디카이오쉬네스(λόγου δικαιοσύνης)는 말씀이신 호 로고스를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는 호 로고스의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호 로고스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숙련(숙달)이 이루어지지 않은 자는 어린아이라는 말이다. 부모가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라는 것이다. 아페이로스는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숙련되지 못한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점차 부모의 음성을 잘 알아듣고, 행동하듯이, 호 로고스가 임재하는 성도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4절 τελείων δέ ἐστιν ἡ στερεὰ τροφή, τῶν διὰ τὴν ἕξιν τὰ αἰσθητήρια γεγυμνασμένα ἐχόντων πρὸς διάκρισιν καλοῦ τε καὶ κακοῦ.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개역개정)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들의 것이니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감각들을 연단시켜 습관화하므로 선악을 분별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서 『그들의 지각을 사용함으로』 라고 번역된 부분의 헬라어는  『διὰ(디아:그 사람들이) τὴν ἕξιν(텐 헥신:그들의 습관) τὰ(타:그들의) αἰσθητήρια(아이스데테리아:감각들) γεγυμνασμέν(게귐나스메나:연단이 된 후에)』즉 성도가 가지고 있는 감각들이 연단된 후에 갖게되는 그 습관들 이다. 성도는 육체가 있으므로 감각적으로 살아가지만, 그의 심령 속에서 임재하는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연단(훈련)이 되어 습관화되면 말씀을 통해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선은 호 로고스의 말씀이고, 악은 자기의 육체로부터 나오는 생각들이다. 이렇게 된 자들이 장성한 자라는 것이다. 


6장 

1-2절 Διὸ ἀφέντες τὸν τῆς ἀρχῆς τοῦ Χριστοῦ λόγον ἐπὶ τὴν τελειότητα φερώμεθα, μὴ πάλιν θεμέλιον καταβαλλόμενοι μετανοίας ἀπὸ νεκρῶν ἔργων καὶ πίστεως ἐπὶ θεόν, βαπτισμῶν διδαχῆς ἐπιθέσεώς τε χειρῶν, ἀναστάσεώς τε νεκρῶν καὶ κρίματος αἰωνίου.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투 크리스투 로곤)의 초보(테스 아르케스)를 버리고(아펜테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페로메다)』 (개역개정)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첫 단계를 지나서 완전함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니라 첫 단계는 죽은 행위들로부터의 회개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세례와 안수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투 크리스투 로곤(τοῦ Χριστοῦ λόγον)은 그리스도이신 말씀이다. 즉 말씀이신 호 로고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테스 아르케스(τῆς ἀρχῆς)는 첫번째(단계)다. 아펜테스(ἀφέντες)는 (첫번째 단계를) 지나서 나아가라는 것이다. 첫번째 단계는 성도의 심령가운데,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는 것이다. 두번째는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위에서 열거된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닦는 것』은 첫단계 이전에 하는 것인데, 첫단계 이후에 이전으로 돌아가지 말고 다음 단계인 완전한 데로 나가라는 것이다. 페로메다(φερώμεθα)는 나아갈지니라가 아니라, 나아가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다. 문법적으로 가정법 현재 수동태로서 히브리서 기자와 듣는 자 모두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그러면 완전한 대로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다음 절에서 설명한다. 

3절 καὶ τοῦτο ποιήσομεν, ἐάνπερ ἐπιτρέπῃ ὁ θεός.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에안페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개역개정)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완전함에 이르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에안페르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이라는 의미다. 성도의 심령 가운데,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는 첫 단계까지의 과정을 보면, 회개와 죄의 용서와 세례와 부활과 심판에 관한 말씀을 듣고,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났는데, 이제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처럼 되고 싶었던 죄의 근원인 옛사람이 죽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거듭남:부활). 하나님은 거듭난 자에게 선물로 성령세례를 주신다. 그래서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 가운데, 들어오시고, 성도의 영도 호 로고스의 성령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성령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성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둘째 단계이다. 둘째 단계 역시 어떤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호 로고스와의 관계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시는 것이다. 성도가 호 로고스와 대화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결과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은사를 주신다. 

4절Ἀδύνατον γὰρ τοὺς ἅπαξ φωτισθέντας, γευσαμένους τε τῆς δωρεᾶς τῆς ἐπουρανίου καὶ μετόχους γενηθέντας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개역개정)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께 참여한 자가 되고』(헬라어 번역성경)

은사를 체험하게 되고, 성령의 사역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5절 καὶ καλὸν γευσαμένους θεοῦ ῥῆμα δυνάμεις τε μέλλοντος αἰῶνος

『하나님의 선한(칼론) 말씀(레마)과 내세(멜론토스)의 능력(뒤나메이스)을 맛보고도』 (개역개정)

『가치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장차 오시려 하는 성령을 맛보게 될 것이다.』(헬라어 번역성경)

칼론(καλὸν)레마 (ῥῆμα)는 가치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레마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멜론토스(μέλλοντος)는 장차 오려하는, 뒤나메이스(δυνάμεις)는 성령이다. 가치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다는 것이다. 가치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말씀이신 호 로고스이시다. 

6절 καὶ παραπεσόντας, πάλιν ἀνακαινίζειν εἰς μετάνοιαν, ἀνασταυροῦντας ἑαυτοῖς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καὶ παραδειγματίζοντας.

『타락한(파라페손타스)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아나카이니제인)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파라데이그마티존타스)』(개역개정)

『타락한 자들은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못박힐 수 없으며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의 아들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타락한 자들을 위해 다시 하나님의 아들이 못박히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죽음은 단 한번으로 족한 것이다. 이 타락한 자는 원래 거듭나지 않으면서 자신은 거듭났다고 믿는 자들이다. 파라데이그마티존타스(παραδειγματίζοντας)는 하나님의 아들을 자기 옆에 세워놓고 연극을 했다는 것이다. 저질스러운 연극을 하면서 그 옆에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놓았다는 것이다. 자신은 의를 입은 자라고 말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악행을 행하는 자들인 것이다. 이를 성령훼방죄라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도 않으면서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처럼 속이는 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남들도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다.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오늘날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에 빠진 자들이다. 십자가의 복음 이외에도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자들이다.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은 거짓 복음을 퍼뜨려 다른 사람도 성령 안으로 들어가게 못하는 자들이다. 초대교회 당시에 이런 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이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파라페손타스(παραπεσόντας)는 타락한, 아나카이니제인(ἀνακαινίζειν)은 새롭게 하다는 의미다. 

성경을 읽으면서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으로 태어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와 연합되는 자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주시는 은혜를 성경을 통해서 깨닫고, 이제 거듭났다고 믿는 자들이다. 그런데, 타락한 자가 있다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고 타락한 자가 아니라, 성경을 읽고, 자기가 스스로 거듭났다고 믿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타락하는 자들은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은 자라고 말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은 자들은 십자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지도 않으면서, 자신이 연합되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자들은 결국 다시 회개하고, 새롭게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은 자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닌 자들이다. 예수믿는다고 했는데, 어느날 예수믿는 것을 버리고, 다른 것에 매달리는 자들은 원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참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만이 영생의 길이 되는 것이다. 

7-8절 γῆ γὰρ ἡ πιοῦσα τὸν ἐπ’ αὐτῆς ἐρχόμενον πολλάκις ὑετὸν καὶ τίκτουσα βοτάνην εὔθετον ἐκείνοις δι’ οὓς καὶ γεωργεῖται, μεταλαμβάνει εὐλογίας ἀπὸ τοῦ θεοῦ· ἐκφέρουσα δὲ ἀκάνθας καὶ τριβόλους, ἀδόκιμος καὶ κατάρας ἐγγύς, ἧς τὸ τέλος εἰς καῦσιν.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개역개정)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땅 가는 자들이 쓰기에 유용한 채소를 내는 밭은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니와 가시와 찔레를 내는 땅은 버려지고 저주함에 가까워서 마지막에는 그 난 것이 불살라지리라.』(헬라어 번역성경)

땅과 밭은 다르다. 밭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 개간한 땅이다. 3장 23절에서도『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땅을 갈아서 밭이 되는 것이며, 땅과 밭을 마음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아다마는 밭이 아니라 땅이다. 땅(아다마)이 잘 경작되어서 밭이 된다.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오는 곳은 땅이고, 채소가 나오는 곳은 밭이다. 먼지(아파르)가 물과 섞이므로 땅(진흙:아다마)이 되고 이 진흙을 사람 모양으로 만든 것이 아담이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이 심판이요, 이 땅에서 하나님없이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것에 대한 심판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잘 지켜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땅은 가시덤불을 내어서, 인간들은 아무리 자기의 의를 행하려고 해도 심판받을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9절 Πεπείσμεθα δὲ περὶ ὑμῶν, ἀγαπητοί, τὰ κρείσσονα καὶ ἐχόμενα σωτηρίας, εἰ καὶ οὕτως λαλοῦμεν.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에코메나 소테리아스)이 있음을 확신하노라』(개역개정)

『사랑하는 자들아 비록 우리가 이같이 말하지만 너희에게는 더 좋은 것들과 구원을 이끄시는 분이 있음을 확신하노라.』(헬라어 번역성경)

에코메나 소테리아스(ἐχόμενα σωτηρίας)는 구원의 호 로고스를 의미한다. 

10절 οὐ γὰρ ἄδικος ὁ θεὸς ἐπιλαθέσθαι τοῦ ἔργου ὑμῶν καὶ τῆς ἀγάπης ἧς ἐνεδείξασθε εἰς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διακονήσαντες τοῖς ἁγίοις καὶ διακονοῦντες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아가페스)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개역개정)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의 사역과 너희가 성도들을 섬겨 왔으며 또 섬기며 그분의 이름을 향하여 보여준 그 사랑을 잊지 아니하시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아가페스(ἀγάπης)는 십자가의 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신실한 성도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를 정확히 신도들에게 전달하여,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자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11절ἐπιθυμοῦμεν δὲ ἕκαστον ὑμῶν τὴν αὐτὴν ἐνδείκνυσθαι σπουδὴν πρὸς τὴν πληροφορίαν τῆς ἐλπίδος ἄχρι τέλους,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플레로 포리안)에 이르러』(개역개정)

『우리는 이제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열망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충만한 확신에 이르기를 바라노니』(헬라어 번역성경)

부지런함은 심령 속의 호 로고스의 음성을 빨리 들어라는 것이다. 플레로포리안은 틀림없는 확신이다. 즉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그에 따라 순종하는 자가 되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는 분명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12절ἵνα μὴ νωθροὶ γένησθε, μιμηταὶ δὲ τῶν διὰ πίστεως καὶ μακροθυμίας κληρονομούντων τὰς ἐπαγγελίας.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마크로뒤미아스)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개역개정)

『이것은 너희가 게으른 자가 되지 아니하고 믿음과 인내를 통해 약속들을 상속받는 자들의 본이 되게 하려 함이라.』(헬라어 번역성경)

게으르지 말고는 빨리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이다. 마크로뒤미아스는 호 로고스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힘든 일이다. 그래서 참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휘포모네(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3-14절 Τῷ γὰρ Ἀβραὰμ ἐπαγγειλάμενος ὁ θεός, ἐπεὶ κατ’ οὐδενὸς εἶχεν μείζονος ὀμόσαι, ὤμοσεν καθ’ ἑαυτοῦ λέγων·εἰ μὴν εὐλογῶν εὐλογήσω σε καὶ πληθύνων πληθυνῶ σε·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개역개정)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을 때에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신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네게 복을 줄 것이요 복이 되며 너를 번성하게 할 것이요 번성하리라 하셨더니』(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은 분명히 언약을 지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준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복은 약속의 씨인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것이 최종적인 복이다. 

15절 καὶ οὕτως μακροθυμήσας ἐπέτυχεν τῆς ἐπαγγελίας.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개역개정)

『그가 이같이 인내로 기다렸으므로 그 약속하신 것을 얻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아브라함은 인내로 기다렸으므로 약속을 받았지만,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백성들은 약속을 받지 못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이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는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친척 롯을 데리고 나왔으며,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여겼으며,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사라대신 하갈로 택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리고 드디어 99세가 되어 하나님이 내년에 약속의 아들을 주신다는 말을 믿고 순종하여, 100세에 이삭을 낳게 된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25년이 걸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에 완전한 순종을 하게 된다. 물론 하나님이 이삭 대신 수염소를 대신 제물로 바치게 했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인 것이다. 이것이 오래참음의 믿음이다. 

16-17절ἄνθρωποι γὰρ κατὰ τοῦ μείζονος ὀμνύουσιν, καὶ πάσης αὐτοῖς ἀντιλογίας πέρας εἰς βεβαίωσιν ὁ ὅρκος· ἐν ᾧ περισσότερον βουλόμενος ὁ θεὸς ἐπιδεῖξαι τοῖς κληρονόμοις τῆς ἐπαγγελίας τὸ ἀμετάθετον τῆς βουλῆς αὐτοῦ ἐμεσίτευσεν ὅρκῳ,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상속자)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개역개정)

『사람들은 더 큰 자를 두고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확정을 위한 끝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도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자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풍성히 보여 주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써 보증하셨나니』(헬라어 번역성경)

기업은 상속자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맹세까지 말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담을 통하여 여인의 후손을 약속했는데, 수많은 시간이 흘러간 후에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은 노아와 그의 가족 일곱 뿐이었다. 이후 하나님은 그 약속을 몸에 새기도록 했다. 그게 할례다. 할례는 씨(여인의 수손)의 약속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할례의 의미도 모른채, 형식적인 할례를 하고 씨의 약속을 마음으로는 받아드리지 못했다. 하나님은 책에다 기록하였다. 그게 율법이다.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라는 것인데, 백성들은 율법주의로 나가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예 하나님은 직접 육신을 입고, 자칭 백성이라는 사람들에게 다가갔지만, 돌아오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지금까지의 사람들의 믿음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보증하셨지만, 백성들(교회 안에 있는 자)은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이 무엇을 믿지 않는가?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에 임재하여, 말씀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18절ἵνα διὰ δύο πραγμάτων ἀμεταθέτων, ἐν οἷς ἀδύνατον ψεύσασθαι [τὸν] θεόν, ἰσχυρὰν παράκλησιν ἔχωμεν οἱ καταφυγόντες κρατῆσαι τῆς προκειμένης ἐλπίδος·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파라크레신)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개역개정)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이 두가지로 말미암아 강한 권면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헬라어 번역성경)

두가지 하나님이 하신 일은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성령세례와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에 임재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파라크레신(παράκλησιν)은 권면이다. 파라클레토스는 성령이다. 옆에서 도와주시고 권면하시는 성령을 의미한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역시 심령 속에서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의 말씀과 도우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19절ἣν ὡς ἄγκυραν ἔχομεν τῆς ψυχῆς ἀσφαλῆ τε καὶ βεβαίαν καὶ εἰσερχομένην εἰς τὸ ἐσώτερον τοῦ καταπετάσματος,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개역개정)

『그것은 우리에게 있는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고 굳건하여 휘장 안에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휘장 안은 지성소를 의미한다. 즉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이 신도들을 만나러 오신다고 말을 하는데, 하나님은 거듭난 자의 심령에 들어올 뿐, 아무에게나 가시지 않는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성소에만 이름으로 계실 뿐이다. 따라서 대제사장이 하나님을 만나러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처럼, 성도 역시 그의 심령 속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를 만나러,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휘포모네:관상기도)

20절ὅπου πρόδρομος ὑπὲρ ἡμῶν εἰσῆλθεν Ἰησοῦς, κατὰ τὴν τάξιν Μελχισέδεκ ἀρχιερεὺς γενόμενος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개역개정)

『그곳으로 우리를 위해 앞서 가신 분 곧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느니라. 』(헬라어 번역성경)

6장 1절에서 멜기세덱에 대해서 말하고 마지막 절에서도 멜기세덱에 대해서 말을 마친다.  떡과 포도주의 의미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떡은 예수의 살이고, 떡(살)을 먹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그리고 포도주는 예수의 피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그의 피로 죄를 사하심을 얻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멜긱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으로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성부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죄 사하심을 받고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는 것이다. 믿는 자만 이것이 적용된다.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7장 

1-2절 Οὗτος γὰρ ὁ Μελχισέδεκ, βασιλεὺς Σαλήμ, ἱερεὺς τοῦ θεοῦ τοῦ ὑψίστου, ὁ συναντήσας Ἀβραὰμ ὑποστρέφοντι ἀπὸ τῆς κοπῆς τῶν βασιλέων καὶ εὐλογήσας αὐτόν, ᾧ καὶ δεκάτην ἀπὸ πάντων ἐμέρισεν Ἀβραάμ, πρῶτον μὲν ἑρμηνευόμενος βασιλεὺς δικαιοσύνης ἔπειτα δὲ καὶ βασιλεὺς Σαλήμ, ὅ ἐστιν βασιλεὺς εἰρήνης,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개역개정)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니라 그가 왕들을 처단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서 그를 축복하였으며 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나게 된 배경은 창세기 14장 1-2절에서 말한다.『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이 국제적 전쟁에서 조카 롯이 사로 잡혀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삼백십팔명의 개인 사병을 이끌고 구출하고 왔는데, 소돔왕이 아브라함을 먼저 영접하였고, 이어서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라함을 축복해주었다는 이야기다. 

창세기 14장 19-20절에서『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멜기세덱의 이름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요,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라는 것이다. 제사장의 역할이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서 의와 평강을 이루게 한다. 아브라함이 겪은 세상에서의 전쟁은 영적 전쟁을 예표한다. 그리고 멜기세덱이라는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3절ἀπάτωρ ἀμήτωρ ἀγενεαλόγητος, μήτε ἀρχὴν ἡμερῶν μήτε ζωῆς τέλος ἔχων, ἀφωμοιωμένος δὲ τῷ υἱῷ τοῦ θεοῦ, μένει ἱερεὺς εἰς τὸ διηνεκές.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개역개정)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혈통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오직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셨으며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헬라어 번역성경)

이 말은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이 아니라, 유대인 랍비들이 창세기 14장에 대한 해석으로 주석을 만들었는데, 그것에 근거해서 나온 말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유대인들에게 이 말을 할 때는 이미 그들이 구약성경의 주석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었던 것이다. 

4-6절 Θεωρεῖτε δὲ πηλίκος οὗτος, ᾧ [καὶ] δεκάτην Ἀβραὰμ ἔδωκεν ἐκ τῶν ἀκροθινίων ὁ πατριάρχης. καὶ οἱ μὲν ἐκ τῶν υἱῶν Λευὶ τὴν ἱερατείαν λαμβάνοντες ἐντολὴν ἔχουσιν ἀποδεκατοῦν τὸν λαὸν κατὰ τὸν νόμον, τοῦτ’ ἔστιν τοὺς ἀδελφοὺς αὐτῶν, καίπερ ἐξεληλυθότας ἐκ τῆς ὀσφύος Ἀβραάμ· ὁ δὲ μὴ γενεαλογούμενος ἐξ αὐτῶν δεδεκάτωκεν Ἀβραὰμ καὶ τὸν ἔχοντα τὰς ἐπαγγελίας εὐλόγηκεν.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데오레이테)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율법을 따라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자기 형제인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레위 족보에 들지 아니한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고 약속을 받은 그를 위하여 복을 빌었나니』(개역개정)

『이제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지 깊이 관찰해 보라 심지어 아브라함도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진실로 레위의 아들들 중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자기 형제들인 그 백성이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따라 그들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멜기세덱은 그들 혈통의 계보로부터 나오지 않았음에도 아브라함으로 부터 십분의 일을 받고 약속들을 가진 그를 축복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데오레이테(Θεωρεῖτε)는 유심히 관찰해 보라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이 일은 아브라함 만 바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가 바친 것으로 확장된다. 레위의 아들들 가운데 제사장 직분을 가진 자들이 십일조를 취하라는 명령이 있지만 멜기세덱은 레위 족보에 들지도 않았음에도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7장 9-10절에서는 아브라함만 바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대 레위까지 바쳤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레위는 아브라함의 허리(자손들)에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의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하늘로부터 주어진 복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축복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십일조의 의미가 된다. 아브라함, 레위, 이스라엘 모두가 하늘에서 주어진 복으로 말미암아 살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멜기세덱으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하나님 나라 상속자가 되는)을 주실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7-8절 χωρὶς δὲ πάσης ἀντιλογίας τὸ ἔλαττον ὑπὸ τοῦ κρείττονος εὐλογεῖται. καὶ ὧδε μὲν δεκάτας ἀποθνῄσκοντες ἄνθρωποι λαμβάνουσιν, ἐκεῖ δὲ μαρτυρούμενος ὅτι ζῇ.

『논란의 여지 없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느니라 또 여기는 죽을 자들(아포드네스콘테스)이 십분의 일을 받으나 저기는 산다고 증거를 얻은 자가 받았느니라』 (개역개정)

『낮은 자가 더 높은 자로 부터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논란의 여지가 없느니라 또 여기서는 사역을 위해 목숨을 다하는 자가 십분의 일을 받았으나 저기서는 살아있음이 증언되는 이가 받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아포드네스콘테스(ἀποθνῄσκοντες)는 사역을 위해 자기 목숨을 다하는 자들(레위인들)도 십분의 일을 받았지만, 저기(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었을 뿐만 아니라, 새생명으로 부활하시고,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셨다는 것이다. 그 분(멜기세덱:예수 그리스도)이 아브라함으로 부터 십일조를 받았다는 것이다. 

9-11절 καὶ ὡς ἔπος εἰπεῖν, δι’ Ἀβραὰμ καὶ Λευὶ ὁ δεκάτας λαμβάνων δεδεκάτωται· ἔτι γὰρ ἐν τῇ ὀσφύϊ τοῦ πατρὸς ἦν ὅτε συνήντησεν αὐτῷ Μελχισέδεκ.Εἰ μὲν οὖν τελείωσις διὰ τῆς Λευιτικῆς ἱερωσύνης ἦν, ὁ λαὸς γὰρ ἐπ’ αὐτῆς νενομοθέτηται, τίς ἔτι χρεία κατὰ τὴν τάξιν Μελχισέδεκ ἕτερον ἀνίστασθαι ἱερέα καὶ οὐ κατὰ τὴν τάξιν Ἀαρὼν λέγεσθαι;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개역개정)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 안에서 십분의 일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에 레위는 여전히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느니라 만일 레위의 제사장 체계를 통해 완전함이 올 수 있었다면 (백성이 그의 제사장 체계의 법을 받았으리라) 어찌하여 아론의 계통을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었겠느냐』(헬라어 번역성경)

아론의 반차를 따른 제사장은 완전한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온전한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엔(ἦν)은 미완료 be 동사(were)에 해당한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온전한 제사장(멜기세덱의 반차)으로서 죄인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는 의와 화평을 위한 중재이며, 그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을 얻게 되는데,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친 것처럼, 성도들도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십일조는 율법에 따른 십일조와 영적인 십일조가 있다는 말씀이다. 율법에 따른 십일조는 이미 폐지되었으나, 아브라함이 바친 십일조는 영적인 의미로 받아드려야만 한다. 오늘날 영적 전쟁으로 인해서 승리하여 사는 삶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귀한 것으로 보답하는 것이다. 율법의 규정으로 생각하는 십일조가 아니라, 영적인 의미로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는 것(자기를 드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율법적인 규정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영적인 것을 강조한다. 

12절 μετατιθεμένης γὰρ τῆς ἱερωσύνης ἐξ ἀνάγκης καὶ νόμου μετάθεσις γίνεται.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개역개정) 

『제사장 체계가 변하였은즉 율법도 바꾸어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이스라엘은 제사를 관장하는 제사장과 율법을 관장하는 서기관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제사장이 더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제사보다 율법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율법주의 신앙으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율법주의를 강조하는 상황에서는 아론의 반차를 때르는 제사장으로는 온전하지 못하고, 오직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 바뀌고, 그에 따라 율법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에는 레위지파만 제사장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3-15절ἐφ’ ὃν γὰρ λέγεται ταῦτα, φυλῆς ἑτέρας μετέσχηκεν, ἀφ’ ἧς οὐδεὶς προσέσχηκεν τῷ θυσιαστηρίῳ·πρόδηλον γὰρ ὅτι ἐξ Ἰούδα ἀνατέταλκεν ὁ κύριος ἡμῶν, εἰς ἣν φυλὴν περὶ ἱερέων οὐδὲν Μωϋσῆς ἐλάλησεν. καὶ περισσότερον ἔτι κατάδηλόν ἐστιν, εἰ κατὰ τὴν ὁμοιότητα Μελχισέδεκ ἀνίσταται ἱερεὺς ἕτερος,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개역개정)

『이런 일들에 대해서 언급되는 그분은 다른 지파에 속하셨는데 그 지파에서는 아무도 제단에서 섬기는 일을 맡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 주께서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는 모세가 제사장 직분에 관해 말한 것이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다른 제사장이 세워지신 것을 보니 그 일이 더욱 분명하도다.』(헬라어 번역성경)

그래서, 예수님도 레위지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유다지파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사역하시는 것은 율법에서 정해놓은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말을 한다. 

16-17절ὃς οὐ κατὰ νόμον ἐντολῆς σαρκίνης γέγονεν ἀλλὰ κατὰ δύναμιν ζωῆς ἀκαταλύτου. μαρτυρεῖται γὰρ ὅτι σὺ ἱερεὺς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κατὰ τὴν τάξιν Μελχισέδεκ.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아카탈뤼투) 생명의 능력(뒤나민)을 따라 되었으니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개역개정)

『이분은 육신에 속한 명령의 율법에 따라 된 것이 아니라 끊어지지 않는 생명의 능력에 따라 되셨으니 증언되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시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아카탈뤼투(ἀκαταλύτου)는 줄이 느슨해지지 않는 이라는 의미다. 뒤나민(δύναμιν)은 신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육신에 속한 계명의 법을 따르는 것은 율법주의, 인본주의 등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인 능력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18절ἀθέτησις μὲν γὰρ γίνεται προαγούσης ἐντολῆς διὰ τὸ αὐτῆς ἀσθενὲς καὶ ἀνωφελές–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개역개정)

『앞서 있던 명령은 자체의 연약함과 무익함으로 인하여 진실로 폐하여지는바』(헬라어 번역성경)

계명은 율법주의를 의미한다. 율법과 율법주의를 잘 구분해야만 한다. 율법속에는 그리스도가 숨어있지만, 율법주의는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유대인들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율법주의는 구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무익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폐하여져야 한다. 

19절 οὐδὲν γὰρ ἐτελείωσεν ὁ νόμος– ἐπεισαγωγὴ δὲ κρείττονος ἐλπίδος δι’ ἧς ἐγγίζομεν τῷ θεῷ.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개역개정)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나 이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는 더 좋은 소망이 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소망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주의로서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20-22절 Καὶ καθ’ ὅσον οὐ χωρὶς ὁρκωμοσίας· οἱ μὲν γὰρ χωρὶς ὁρκωμοσίας εἰσὶν ἱερεῖς γεγονότες, ὁ δὲ μετὰ ὁρκωμοσίας διὰ τοῦ λέγοντος πρὸς αὐτόν·ὤμοσεν κύριος καὶ οὐ μεταμεληθήσεται· σὺ ἱερεὺς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κατὰ τοσοῦτο [καὶ] κρείττονος διαθήκης γέγονεν ἔγγυος Ἰησοῦς.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개역개정)

『또한 그분은 맹세없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 제사장들은 맹세없이 되었으나 그분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을 힘입어 맹세로 되셨느니라 곧 주께서 맹세하셨고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맹세는 신명기 29장 1절에서『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그리고 29장 13-14절에서『네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여하며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하시는 맹세에 참여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그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언약은 시내산(호렙)에서 모세를 통하여 옛사람에게 명령하였고, 새언약은 모압 땅에서 모세를 통하여 새사람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이 맹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맹세는 언약과 새언약 이전에 하신 명령이 된다. 결국 모압 땅에서 하신 새 언약은 근본적으로 이 맹세를 근거로 하신다는 것이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ο δε μετα ορκωμοσιας δια του λεγοντος προς αυτον ωμοσεν κυριος και ου μεταμεληθησεται συ ιερευς εις τον αιωνα κατα την ταξιν μελχισεδεκ 

그 제사장들은 맹세없이 되었으나 그분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을 힘입어 맹세로 되셨느니라 곧 주께서 맹세하셨고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시니라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ὁ δὲ μετὰ ὁρκωμοσίας διὰ τοῦ λέγοντος πρὸς αὐτόν·ὤμοσεν κύριος καὶ οὐ μεταμεληθήσεται· σὺ ἱερεὺς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그 제사장들은 맹세없이 되었으나 그분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을 힘입어 맹세로 되셨느니라 곧 주께서 맹세하셨고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시니라 

스테파누스 성경의 κατα την ταξιν μελχισεδεκ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이 부분이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없다. 

23-24절 Καὶ οἱ μὲν πλείονές εἰσιν γεγονότες ἱερεῖς διὰ τὸ θανάτῳ κωλύεσθαι παραμένειν·ὁ δὲ διὰ τὸ μένειν αὐτὸν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ἀπαράβατον ἔχει τὴν ἱερωσύνην·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개역개정)

『참으로 제사장들의 수가 많은 것은 그들이 죽음으로 인해 계속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나 그는 항상 그분의 곁에 있으므로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소유하시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영원히 사시는 분이므로, 제사장직도 변경되지 않는다.  

25절ὅθεν καὶ σῴζειν εἰς τὸ παντελὲς δύναται τοὺς προσερχομένους δι’ αὐτοῦ τῷ θεῷ, πάντοτε ζῶν εἰς τὸ ἐντυγχάνειν ὑπὲρ αὐτῶν.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토 엔팅카데인)』 (개역개정)

『그러므로 그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며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토 엔팅카네인(τὸ ἐντυγχάνειν)은 중보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중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사용할 수 없다. 중보는 대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은 쉽게 중보라는 말을 한다. 합심기도를 중보기도라고 사용하는 것이다. 

26절 Τοιοῦτος γὰρ ἡμῖν καὶ ἔπρεπεν ἀρχιερεύς, ὅσιος ἄκακος ἀμίαντος, κεχωρισμένος ἀπὸ τῶν ἁμαρτωλῶν καὶ ὑψηλότερος τῶν οὐρανῶν γενόμενος,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개역개정)

『이렇게 우리에게 진실로 합당하셨던 대제사장은 거룩하시고 순전하시고 더러움이 없으시고 죄인들로부터 분리되시고 하늘들보다 더 높이 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그래서 이 분이 중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보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톤 우리논은 성도들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27절ὃς οὐκ ἔχει καθ’ ἡμέραν ἀνάγκην, ὥσπερ οἱ ἀρχιερεῖς, πρότερον ὑπὲρ τῶν ἰδίων ἁμαρτιῶν θυσίας ἀναφέρειν ἔπειτα τῶν τοῦ λαοῦ· τοῦτο γὰρ ἐποίησεν ἐφάπαξ ἑαυτὸν ἀνενέγκας.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개역개정)

『그는 저 대제사장들과 같이 먼저 자기의 죄들로 인하여 날마다 희생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들로 인하여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가 친히 자신을 드리실 때에 이 일을 단번에 행하셨기 때문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하신 것이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은 원죄만 해결되고, 세상죄는 앞으로 계속 지을 수 있으므로,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믿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이 생각이 바로 율법주의, 인본주의라는 것이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은 희생제사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하심을 받았다. 율법주의는 계명을 통해서 자기가 지을 수 있는 죄를 생각하고, 인본주의는 자기 생각을 바탕으로 십자가의 대속을 판단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의 모든 죄를 사해주신다. 

28절ὁ νόμος γὰρ ἀνθρώπους καθίστησιν ἀρχιερεῖς ἔχοντας ἀσθένειαν, ὁ λόγος δὲ τῆς ὁρκωμοσίας τῆς μετὰ τὸν νόμον υἱὸν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τετελειωμένον.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개역개정)

『율법은 연약함을 가진 사람들을 대제사장들로 삼았지만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대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맹세의 말씀은 호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새언약이시다.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자가 새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에서 멜기세덱처럼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누가복음 22장 20절에서『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거듭난 자가 새언약을 붙잡는 것이다.


8장

1절 Κεφάλαιον δὲ ἐπὶ τοῖς λεγομένοις, τοιοῦτον ἔχομεν ἀρχιερέα, ὃς ἐκάθισεν ἐν δεξιᾷ τοῦ θρόνου τῆς μεγαλωσύνης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엔 토이스 우라노이스)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개역개정)

『이제 우리가 말한 것들의 요점은 이것이니 곧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계신데 그분은 하늘들 안에서 존엄하신 분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헬라어 번역성경)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는『그 하늘들 안에서』라는 의미로 하늘은 복수로 사용된다. 관사있는 하늘은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시는 하늘을 의미한다. 그래서 엔 토이스 우라노이스는 성도들 안에 임재하신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다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성전을 예로 들면 성전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2절 τῶν ἁγίων λειτουργὸς καὶ τῆς σκηνῆς τῆς ἀληθινῆς, ἣν ἔπηξεν ὁ κύριος, οὐκ ἄνθρωπος.

『성소(톤 하기온)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레이투르고스) 이 장막(스케네스)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개역개정)

『성소와 참 성막을 섬기시는 분이시라 이 성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우신 것이 아니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성소는 큰 의미에서는 지성소를 포함하는 개념이나, 좁은 의미에서는 휘장으로 지성소와 분리된 성소를 의미한다. 레이투르고스는 대제사장을 의미한다. 스케네스는 성소의 다른 표현으로서, 성소를 의미한다. 성소는 성도의 심령 안의 성소로 주께서 세운 것이고 말한다. 사람이 세운 것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의 성소를 의미한다. 

3-4절 Πᾶς γὰρ ἀρχιερεὺς εἰς τὸ προσφέρειν δῶρά τε καὶ θυσίας καθίσταται· ὅθεν ἀναγκαῖον ἔχειν τι καὶ τοῦτον ὃ προσενέγκῃ. εἰ μὲν οὖν ἦν ἐπὶ γῆς, οὐδ’ ἂν ἦν ἱερεύς, ὄντων τῶν προσφερόντων κατὰ νόμον τὰ δῶρα·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그러므로 그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할지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개역개정)

『대제사장마다 임명을 받아 예물과 희생물을 드리나니 그러므로 그분도 무엇인가 드릴 것이 있어야 함이 마땅하도다 만일 그분께서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였을 것이니 이는 율법에 따라 예물들을 드리는 제사장들이 있기 때문이라.』(헬라어 번역성경)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실 때, 이 땅에 있었던 그 상황이라면,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 있었으므로, 그는 대제사장이 되지 않는 것이다. 

5절 οἵτινες ὑποδείγματι καὶ σκιᾷ λατρεύουσιν τῶν ἐπουρανίων, καθὼς κεχρημάτισται Μωϋσῆς μέλλων ἐπιτελεῖν τὴν σκηνήν· ὅρα γάρ φησιν, ποιήσεις πάντα κατὰ τὸν τύπον τὸν δειχθέντα σοι ἐν τῷ ὄρει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개역개정)

『이 제사장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를 섬기나니 모세가 성막을 만들려 할 때에 하나님께서 지시한 바 이르시되 너는 조심하여 산에서 네게 보여 준 양식을 따라 모든 것을 만들라 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땅에 있는 제사장들이 섬기는 것(성전이나 성막)은 하늘의 모형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표현인 것이다. 구약에서 성전에는 언약궤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성전을 하늘의 모형이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를 성전이라고 말하므로서 성도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6절 νυν [ὶ] δὲ διαφορωτέρας τέτυχεν λειτουργίας, ὅσῳ καὶ κρείττονός ἐστιν διαθήκης μεσίτης, ἥτις ἐπὶ κρείττοσιν ἐπαγγελίαις νενομοθέτηται.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에팡겔리아이스)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디아데케스)의 중보자시라』 (개역개정)

『그러나 이제 그분은 더욱 뛰어난 섬김의 직분을 얻으셨으며 더 좋은 약속들 위에 세워진 훨씬 더 나은 언약의 중재자이시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디아데케스(διαθήκης)는 따로 떼어서 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를 의미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따로 떼어 구분해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세우는 것이 언약을 세우는 것이다. 더 좋은 언약은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 게 맺은 언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은 언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새언약이라고 한다. 

7절 Εἰ γὰρ ἡ πρώτη ἐκείνη ἦν ἄμεμπτος, οὐκ ἂν δευτέρας ἐζητεῖτο τόπος.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개역개정)

『만일 그 첫 언약이 흠이 없었더라면 둘째 것을 구할 필요가 없었으려니와』(헬라어 번역성경)

첫 언약은 율법을 의미한다. 둘째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복음을 의미한다. 율법은 의식법(제사)과 도덕법이 있었다. 의식법은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법은 인간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법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이를 지켜 행하는 것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사두개인들은 제사를, 바리새인들은 도덕법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바리새인들이 담당한 도덕법의 비중이 크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율법주의화 된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백성들에게 주신 목적은 제사를 통해서 의를 이루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날마다 제사를 드리지만, 그 제사와 도덕법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것도 바로 이 두가지를 행하기 위함이었다. 영원한 제사(십자가의 죽음)와 하나님의 의(부활)를 입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이렇게 되는 것이다. 

8절 μεμφόμενος γὰρ αὐτοὺς λέγει· ἰδοὺ ἡμέραι ἔρχονται, λέγει κύριος, καὶ συντελέσω ἐπὶ τὸν οἶκον Ἰσραὴλ καὶ ἐπὶ τὸν οἶκον Ἰούδα διαθήκην καινήν,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개역개정)

『그분이 그들에게 흠이 발견되어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이르시되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과 새언약을 맺으리라 하시니라.』(헬라어 번역성경)

그들의 잘못은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들이다.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거룩해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렸다. 

9절 οὐ κατὰ τὴν διαθήκην, ἣν ἐποίησα τοῖς πατράσιν αὐτῶν ἐν ἡμέρᾳ ἐπιλαβομένου μου τῆς χειρὸς αὐτῶν ἐξαγαγεῖν αὐτοὺς ἐκ γῆς Αἰγύπτου, ὅτι αὐτοὶ οὐκ ἐνέμειναν ἐν τῇ διαθήκῃ μου, κἀγὼ ἠμέλησα αὐτῶν, λέγει κύριος·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개역개정)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가 그들 조상들의 손을 잡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고 나오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 그들이 내 언약 안에 머물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였노라.』(헬라어 번역성경)

옛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한 결과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약속의 땅을 가나안 앞에서 부인하고 말았다. 

10절ὅτι αὕτη ἡ διαθήκη , ἣν διαθήσομαι τῷ οἴκῳ Ἰσραὴλ μετὰ τὰς ἡμέρας ἐκείνας, λέγει κύριος· διδοὺς νόμους μου εἰς τὴν διάνοιαν αὐτῶν καὶ ἐπὶ καρδίας αὐτῶν ἐπιγράψω αὐτούς, καὶ ἔσομαι αὐτοῖς εἰς θεόν, καὶ αὐτοὶ ἔσονταί μοι εἰς λαόν·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텐 디아노이안)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피 카르디아스)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개역개정)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들 이후에 내가 이스라엘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곧 내가 내 법들을 그들의 생각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속에 그것들을 기록하여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한 백성이 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텐 디아노이안(τὴν διάνοιαν)는 영어로 mind(육적 생각), 에피 카르디아스(ἐπὶ καρδίας)는 heart(영의 마음)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육의 생각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그 생각이 영의 마음에 전달되는 것이다. 육의 생각은 지식으로 나타나는 생각이 아니라, 어느 순간 생각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이 육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생각이 영에 반응하는 것이다. 

11절 καὶ οὐ μὴ διδάξωσιν ἕκαστος τὸν πολίτην αὐτοῦ καὶ ἕκαστος τὸν ἀδελφὸν αὐτοῦ λέγων· γνῶθι τὸν κύριον,

ὅτι πάντες εἰδήσουσίν με ἀπὸ μικροῦ ἕως μεγάλου αὐτῶν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그노디) 하지 아니할 것은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라(에이데수신)』(개역개정)

『그들이 각각 그의 이웃과 그의 형제를 가르쳐 말하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다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라.』(헬라어 번역성경)

그노디는 알다(히브리어:야다)라는 것으로 부부관계를 통해서 서로 알게되듯이 호 로고스를 알게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를 알게되므로 별도로 주님에 대해서 가르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에이데수신은 분명히 알게된다는 의미다. 

12절ὅτι ἵλεως ἔσομαι ταῖς ἀδικίαις αὐτῶν καὶ τῶν ἁμαρτιῶν αὐτῶν οὐ μὴ μνησθῶ ἔτι.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개역개정)

『내가 그들의 불의에 대하여 긍휼을 베풀고 다시는 그들의 죄들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 안에 들어가는 자의 모든 죄를 덮허주시는 것이다. 죄가 사라지는 개념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반드시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그 대가가 바로 십자가의 죽음이다. 성도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라는 것이다. 그도 심판받은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입장에서는 육의 눈으로 죄가 보여도, 하나님의 눈에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볼 때, 죄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13절ἐν τῷ λέγειν καινὴν πεπαλαίωκεν τὴν πρώτην· τὸ δὲ παλαιούμενον καὶ γηράσκον ἐγγὺς ἀφανισμοῦ.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개역개정)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분은 첫 언약을 낡은 것으로 만드셨으니 쇠하고 낡아지는 것은 곧 사라지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새언약에 참여하는 자는 옛언약은 필요없게 된다. 오늘날 어떤 내용에 대해서, 법이 있는데, 그 법에 특별법을 또 만들면, 그 법은 필요없게 되는 것이다. 


9장 

1-3절 Εἶχεν μὲν οὖν [καὶ] ἡ πρώτη δικαιώματα λατρείας τό τε ἅγιον κοσμικόν.σκηνὴ γὰρ κατεσκευάσθη ἡ πρώτη ἐν ᾗ ἥ τε λυχνία καὶ ἡ τράπεζα καὶ ἡ πρόθεσις τῶν ἄρτων, ἥτις λέγεται Ἅγια

·μετὰ δὲ τὸ δεύτερον καταπέτασμα σκηνὴ ἡ λεγομένη Ἅγια Ἁγίων,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개역개정)

『그러므로 진실로 첫 언약에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규례들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더라 성막이 준비되었는데 첫째로 방 안에 등잔대와 상과 빵이 놓여 있었으며 성소라 불리고 둘째로 휘장 뒤에 있는 성막은 지성소라 불리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성소마당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다. 번제단에서 희생동물이 죽는다. 그리고 물두멍에서 제사장이 손을 씻고, 성소로 들어가는데, 성소에는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다. 등잔대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상징하며, 성도들에게 세상의 빛이 된다. 진설병은 성경 말씀이다. 즉 성도가 말씀대로 살아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향단이 성소에 있는데, 히브리서에는 향단이 지성소 안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향로는 성도의 기도를 상징한다.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되는 관계를 맺는 행위를 의미한다. 지성소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언약궤는 말씀이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즉 지성소에서 말씀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4-5절 χρυσοῦν ἔχουσα θυμιατήριον καὶ τὴν κιβωτὸν τῆς διαθήκης περικεκαλυμμένην πάντοθεν χρυσίῳ, ἐν ᾗ στάμνος χρυσῆ ἔχουσα τὸ μάννα καὶ ἡ ῥάβδος Ἀαρὼν ἡ βλαστήσασα καὶ αἱ πλάκες τῆς διαθήκης, ὑπεράνω δὲ αὐτῆς Χερουβὶν δόξης κατασκιάζοντα τὸ ἱλαστήριον· περὶ ὧν οὐκ ἔστιν νῦν λέγειν κατὰ μέρος.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식을 행하고』 (개역개정)

『거기에는 금향로와 각면에 금으로 입힌 언약궤가 있었고 이 궤 속에는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 판들이 있었으며 이 궤 위에는 속죄의 긍휼자리를 덮는 영광의 천사 모양들이 있었는데 이것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지금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헬라어 번역성경)

구약시대 초기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없었다. 성소인 것이다. 그래서 향로의 위치가 문제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론의 아들들이 다른 불을 드리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은 후에, 휘장이 쳐진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향로가 성소에 놓이게 되었다. 제사장은 항상 향로에 불을 붙여야 하는데, 지성소에는 일년에 한번 대제사장이 들어갈 수 있으므로 그렇게 변경된 것이다. 원래 향로는 지성소 쪽에 있던 것이었다. 

성소에서 하는 행위는 말씀을 먹고, 촛대의 불처럼 세상의 빛이 되는 자가, 기도로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즉 성소를 거쳐 지성소로 나아가는 것이다. 기도는 프로슈케(관상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백성들의 죄를 상징하는 희생동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간다. 

6-8절 Τούτων δὲ οὕτως κατεσκευασμένων εἰς μὲν τὴν πρώτην σκηνὴν διὰ παντὸς εἰσίασιν οἱ ἱερεῖς τὰς λατρείας ἐπιτελοῦντες,εἰς δὲ τὴν δευτέραν ἅπαξ τοῦ ἐνιαυτοῦ μόνος ὁ ἀρχιερεύς, οὐ χωρὶς αἵματος ὃ προσφέρει ὑπὲρ ἑαυτοῦ καὶ τῶν τοῦ λαοῦ ἀγνοημάτων,τοῦτο δηλοῦντος τοῦ πνεύματος τοῦ ἁγίου, μήπω πεφανερῶσθαι τὴν τῶν ἁγίων ὁδὸν ἔτι τῆς πρώτης σκηνῆς ἐχούσης στάσιν,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개역개정)

『이제 성령께서 이것들을 이와 같이 제정하시매 제사장들이 항상 첫째의 성소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수행하였거니와 둘째의 성막에는 대제사장이 홀로 해마다 한 번 들어가 자기와 백성의 잘못으로 인해 자기가 드리되 피 없이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니 이로써 성령께서 표적으로 보여 주신 것은 첫째의 성소가 아직 서 있는 동안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드러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원래는 휘장이 없었으므로, 다 성소에 들어갔는데, 휘장이 생긴 이래, 제사장이 모두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대제사장만 일년에 한번 들어가게 된 것을 말한다. 

9절ἥτις παραβολὴ εἰς τὸν καιρὸν τὸν ἐνεστηκότα, καθ’ ἣν δῶρά τε καὶ θυσίαι προσφέρονται μὴ δυνάμεναι κατὰ συνείδησιν τελειῶσαι τὸν λατρεύοντα,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파라볼레)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개역개정)

『이 성막은 그 당시까지 옆에 놓여진 모형이므로 그 안에서 예물과 희생물을 드렸어도 그것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완전한 섬김이 되지 못하였나니』(헬라어 번역성경)

양심으로 번역된 쉬네이데센(συνείδησιν)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의미다. 파라볼레(παραβολὴ)는 『옆에 놓여진』이라는 의미다. 본질을 설명하기 위에 옆에 무엇인가를 두고 설명하는 것이다. 본질은 성도의 심령 안에 있는 성소이고, 옆에 있는 것은 구약시대의 성소를 의미한다. 구약시대의 성소는 비록 문제가 있었지만, 이제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10절 μόνον ἐπὶ βρώμασιν καὶ πόμασιν καὶ διαφόροις βαπτισμοῖς, δικαιώματα σαρκὸς μέχρι καιροῦ διορθώσεως ἐπικείμενα.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디오로드세오스)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개역개정)

『이 성막은 단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육신에 속한 규례들로만 유지되어 완전히 바뀔 때까지 그들에게 부여되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구약시대의 성소에 관한 내용은 예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디오르도세오스(διορθώσεως)는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눈에 보이는 성소가 아니라, 심령 속에서 나타나는 성소로 바뀌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예가 바로 세례다. 세례는 물을 적시거나 물에 잠기게 하는 의식이다. 어떤 모양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의식 속에 들어있는 본질은 바로 성령세례라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은 형식적인 세례만 받았을 뿐 본질을 모른다는 말이다. 자신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할 뿐,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였음을 믿지 않는 것이다. 

11-12절 Χριστὸς δὲ παραγενόμενος ἀρχιερεὺς τῶν γενομένων ἀγαθῶν διὰ τῆς μείζονος καὶ τελειοτέρας σκηνῆς οὐ χειροποιήτου, τοῦτ’ ἔστιν οὐ ταύτης τῆς κτίσεως,οὐδὲ δι’ αἵματος τράγων καὶ μόσχων διὰ δὲ τοῦ ἰδίου αἵματος εἰσῆλθεν ἐφάπαξ εἰς τὰ ἅγια αἰωνίαν λύτρωσιν εὑράμενος.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개역개정)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곧 더 크고 더 완전한 성막을 통해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번 성소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속량을 얻으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눈에 보이는 성소에 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에 성소가 나타났으며,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말은 동물의 피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과 연합되어 들어간다는 것이다. 함께 연합되어 죽으면, 예수님의 피가 그와 연합된 자의 죄를 속죄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성소에 들어가신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모든 죄를 짊어지고 성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어느 한쪽만 강조할 수 없는 것이다. 성도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고, 거듭난 성도가 심령 속의 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호 로고스)을 만나기 위함이다. 

13-14절 εἰ γὰρ τὸ αἷμα τράγων καὶ ταύρων καὶ σποδὸς δαμάλεως ῥαντίζουσα τοὺς κεκοινωμένους ἁγιάζει πρὸς τὴν τῆς σαρκὸς καθαρότητα,πόσῳ μᾶλλον τὸ αἷμα τοῦ Χριστοῦ, ὃς διὰ πνεύματος αἰωνίου ἑαυτὸν προσήνεγκεν ἄμωμον τῷ θεῷ, καθαριεῖ τὴν συνείδησιν ἡμῶν ἀπὸ νεκρῶν ἔργων εἰς τὸ λατρεύειν θεῷ ζῶντι.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개역개정)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육체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거든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자신을 흠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훨씬 더 섬기도록 우리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마음을 죽은 행실로부터 더 정결하게 할 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쉬네이데신은 양심으로 번역되었으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마음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성령세례를 받고, 심령 속의 성소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를 섬기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이신득의가 되는 것이다. 이신칭의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이신칭의는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논리다. 그래서 신도들이 이신칭의를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고 믿지만, 심령 속의 호 로고스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는자는 예수와 함께 부활도 없으며, 심령 속의 성소도 없는 것이다. 

15-18절Καὶ διὰ τοῦτο διαθήκης καινῆς μεσίτης ἐστίν, ὅπως θανάτου γενομένου εἰς ἀπολύτρωσιν τῶν ἐπὶ τῇ πρώτῃ διαθήκῃ παραβάσεων τὴν ἐπαγγελίαν λάβωσιν οἱ κεκλημένοι τῆς αἰωνίου κληρονομίας.Ὅπου γὰρ διαθήκη, θάνατον ἀνάγκη φέρεσθαι τοῦ διαθεμένου·διαθήκη γὰρ ἐπὶ νεκροῖς βεβαία, ἐπεὶ μήποτε ἰσχύει ὅτε ζῇ ὁ διαθέμενος.ὅθεν οὐδὲ ἡ πρώτη χωρὶς αἵματος ἐγκεκαίνισται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개역개정)

『이런 까닭에 그분께서는 새 언약의 중재자이시니 이것은 첫 언약 아래 있던 죄인들을 속량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영원한 상속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상속 언약이 있는 곳에는 또한 반드시 상속 언약하는 자의 죽음이 있어야 하나니 상속 언약은 사람이 죽은 뒤에라야 효력이 있고 상속 언약하는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 힘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상속 언약도 피 없이 개시되지 아니하였나니』(헬라어 번역성경)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이루신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자들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심이다. 첫언약은 구약시대 율법에 의한 언약을 의미한다. 이 언약(여인의 후손)도 희생제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19-22절 λαληθείσης γὰρ πάσης ἐντολῆς κατὰ τὸν νόμον ὑπὸ Μωϋσέως παντὶ τῷ λαῷ, λαβὼν τὸ αἷμα τῶν μόσχων [καὶ τῶν τράγων] μετὰ ὕδατος καὶ ἐρίου κοκκίνου καὶ ὑσσώπου αὐτό τε τὸ βιβλίον καὶ πάντα τὸν λαὸν ἐρράντισεν λέγων·τοῦτο τὸ αἷμα τῆς διαθήκης ἧς ἐνετείλατο πρὸς ὑμᾶς ὁ θεός.καὶ τὴν σκηνὴν δὲ καὶ πάντα τὰ σκεύη τῆς λειτουργίας τῷ αἵματι ὁμοίως ἐρράντισεν.καὶ σχεδὸν ἐν αἵματι πάντα καθαρίζεται κατὰ τὸν νόμον καὶ χωρὶς αἱματεκχυσίας οὐ γίνεται ἄφεσις.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개역개정)

『모세가 율법에 따라 온 백성에게 모든 명령의 말씀을 말한 뒤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물과 주홍색 양털과 우슬초와 함께 취하여 그 서적과 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였고 또한 성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이와 같이 피를 뿌렸느니라 율법에 따라 거의 모든 것이 피로써 깨끗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면이 없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출애굽기 12장 6-7절에서『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에서 먼저 양을 죽여서 각을 뜬다. 그리고 피를 양을 먹을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다. 12장 8-11절에서는『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라고 했다. 

히브리 백성이 어린양의 고기를 먹기 시작하므로 피의 효능이 나타난다. 그러나 밖에서는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게된다. 오늘날 성찬을 할 때 떡을 먹지 않고 잔만 마실 수는 없다. 구원의 시작은 어린양을 죽여서 그 어린양의 고기를 먹으므로 먹는 자가 그 어린양의 죽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어린양의 죽음이 먹는 자에게는 생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속량(구속)이다. 고기를 먹는 것이 돈을 지불하고 사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피를 보고 넘어가신다. 어린 양의 고기를 먹은 자의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속량이 죄사하심』이 되는 것이다. 에베소서 1장 7-10절은『속량이 없이는 죄사하심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속량은 돈으로 노예를 산 것 처럼, 노예의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속량받은 자는 주님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린양의 고기를 먹는 행위다. 어린양의 고기를 먹는 자는『나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고백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럴 때 주님이 노예의 더러움을 씻어주신다. 죄를 용서받기 전에 속량이 먼저 있어야만 하는 이유다. 

23절Ἀνάγκη οὖν τὰ μὲν ὑποδείγματα τῶν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 τούτοις καθαρίζεσθαι, αὐτὰ δὲ τὰ ἐπουράνια κρείττοσιν θυσίαις παρὰ ταύτας.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개역개정)

『그러므로 하늘들에 있는 것들의 모형들은 이런 것들로 깨끗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의 것들 그 자체는 이런 것들보다 더 나은 희생제물로 하여야 할지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더 좋은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속량이라는 의미와 죄 사함이 동시에 적용된다. 하나님이 사탄으로부터 자기 아들의 피값으로 사는 것이 속량이다. 속량이 없는 죄사함은 없다. 노예를 산 다음에 더러움을 씻어주는 것이다. 디도서 2장 14절에서『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속량이 되어야 깨끗하게 된다. 하나님이 회개하여 옛사람의 옷을 벗는 자를 속량하셔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24절 οὐ γὰρ εἰς χειροποίητα εἰσῆλθεν ἅγια Χριστός, ἀντίτυπα τῶν ἀληθινῶν, ἀλλ’ εἰς αὐτὸν τὸν οὐρανόν, νῦν ἐμφανισθῆναι τῷ προσώπῳ τοῦ θεοῦ ὑπὲρ ἡμῶν·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톤 우라논)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개역개정)

『그리스도는 참된 것의 모형인 손으로 만든 성소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톤 우라논(τὸν οὐρανόν)에서, 관사가 있는 단수의 하늘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그러나 관사가 있는 복수의 하늘은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사하심을 받을 때는 지성소로 들어가서 희생동물의 피로 속죄박았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승천하시어, 세상죄를 지고 성부 하나님 보좌로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거듭난 자의 심령 속으로 임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도의 심령 안에 임재하시는 것도 성육신이라고 한다. 

25-26절 οὐδ’ ἵνα πολλάκις προσφέρῃ ἑαυτόν, ὥσπερ ὁ ἀρχιερεὺς εἰσέρχεται εἰς τὰ ἅγια κατ’ ἐνιαυτὸν ἐν αἵματι ἀλλοτρίῳ, ἐπεὶ ἔδει αὐτὸν πολλάκις παθεῖν ἀπὸ καταβολῆς κόσμου· νυνὶ δὲ ἅπαξ ἐπὶ συντελείᾳ τῶν αἰώνων εἰς ἀθέτησιν [τῆς] ἁμαρτίας διὰ τῆς θυσίας αὐτοῦ πεφανέρωται.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개역개정)

『또 그분은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들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반복하여 자신을 드려야 할 필요가 없으시니 그랬더라면 그분은 반드시 창세 이래로 반복하여 고난을 당하셨어야 할 것이라 그러나 이제 세상 끝에 그분은 단번에 나타나사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세상 끝이라는 의미는 호 로고스가 성도의 심령에 들어오신 이후 부터, 그리스도가 재림하시기 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오순절 성령 강림부터 예수님 재림 때까지를 의미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탄의 종이 되었다. 사탄의 자식이라는 표시가 육체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육의 몸이 예수와 함께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거듭나), 새생명이 되어 하나님이 성령세례로 인을 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표시를 해주셨다. 이제 사탄의 지배에서 호 로고스의 지배하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부터 종말 때까지 사탄과의 영적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호 로고스께서 주인되시므로, 사탄이 감히 접근도 못하나, 사탄은 할 수만 있다면, 택한 자를 넘어뜨리려고 한다. 사탄을 물리치는 방법은 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하고, 호 로고스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27절 καὶ καθ’ ὅσον ἀπόκειται τοῖς ἀνθρώποις ἅπαξ ἀποθανεῖν, μετὰ δὲ τοῦτο κρίσις,

『한번 죽는(아포다네인) 것은 사람에게(토이스 안드로포이스)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크리시스)이 있으리니』 (개역개정)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헬라어 번역성경)

아포다네인(ἀποθανεῖ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다. 토이스 안드로포이스(τοῖς ἀνθρώποις)는 관사가 있으므로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심령 가운데, 호 로고스가 임재하여 구원받은 성도를 의미한다. 구원받은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번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라고 말하는 그 죽음을 의미한다. 죽음은 단 한번으로 끝나며, 그래서 모든 죄가 예수의 피로 사라지는 것이다. 원죄만 용서받고, 앞으로 발생할 세상죄는 사하심을 받지 않았다고 믿는 자는 믿음대로 하나님이 율법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 크리시스는 심판이 아니라 판단이다.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죽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신다. 

28절 οὕτως καὶ ὁ Χριστὸς ἅπαξ προσενεχθεὶς εἰς τὸ πολλῶν ἀνενεγκεῖν ἁμαρτίας ἐκ δευτέρου χωρὶς ἁμαρτίας ὀφθήσεται τοῖς αὐτὸν ἀπεκδεχομένοις εἰς σωτηρίαν.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엔 크리스토스) 나타나시리라』(개역개정)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번 제물로 드려지셨으며 또 죄와 상관 없이 구원을 향하여 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죄와 상관없이 라는 말은 부활하시어, 호 크리스토스(ὁ Χριστὸς)는 성도의 심령 안에 임재하신다. 


10장 

1절 Σκιὰν γὰρ ἔχων ὁ νόμος τῶν μελλόντων ἀγαθῶν, οὐκ αὐτὴν τὴν εἰκόνα τῶν πραγμάτων, κατ’ ἐνιαυτὸν ταῖς αὐταῖς θυσίαις ἃς προσφέρουσιν εἰς τὸ διηνεκὲς οὐδέποτε δύναται τοὺς προσερχομένους τελειῶσαι·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개역개정)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으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리는 희생제사로는 가까이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율법은 옛언약이다. 율법 속에는 제사법과 행위법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율법은 제사를 드리는 율법을 의미한다. 제사법을 통해서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제사법을 통해, 제사장이 완전하지 못한 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백성들 자신이 날마다 드리는 제사를 통해서는 하나님께 완전히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약속의 씨를 통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깨달았어야만 했는데, 백성들은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다. 

새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는 새언약이 바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인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구약시대에 제사법에 의한 제사를 드리지만, 행위법(도덕법)에 관심을 집중한 것 처럼, 행위법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즉 복음을 따르지만 율법주의로서 계명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복음만이 진리의 길인데, 복음과 율법주의를 섞는 다른 복음이 되는 것이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성령훼방죄를 짓는 것이다. 자기도 구원받지 못하고, 남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교역자들이 중보자 대제사장 역할을 하려고 한다면, 바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법이고, 복음은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령의 법이다. 

2절ἐπεὶ οὐκ ἂν ἐπαύσαντο προσφερόμεναι διὰ τὸ μηδεμίαν ἔχειν ἔτι συνείδησιν ἁμαρτιῶν τοὺς λατρεύοντας ἅπαξ κεκαθαρισμένους;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개역개정)

『그렇지 않으면 섬기는 자들이 한 번에 깨끗하게 되어 더 이상 죄들을 의식하지 아니하였을 터이므로 그것들을 드리는 일을 그쳤을 것이라 그렇지 않겠느냐』(헬라어 번역성경)

섬기는 자들은 구약의 제사장들이다. 제사장들이 스스로 부정하므로 먼저 제사를 드렸는데, 그 제사가 온전했다면,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지 않았는냐 라는 것이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는 온전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3-4절ἀλλ’ ἐν αὐταῖς ἀνάμνησις ἁμαρτιῶν κατ’ ἐνιαυτόν·ἀδύνατον γὰρ αἷμα ταύρων καὶ τράγων ἀφαιρεῖν ἁμαρτίας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개역개정)

『그러나 이 희생제사에는 해마다 죄들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함이 불가능하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죄인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죄인임을 기억하고 있지만, 동물의 피는 그 죄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일 뿐 아니라, 죄를 대속하는 피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자는 그 피를 힘입어, 온전히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대속은 값을 지불하는 의미를 갖는다. 율법의 조항 한 하나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았으니 마느니 라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사탄의 속박아래 있던 자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그런 개념인 것이다. 그래서 죄인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 죽을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되었음을 믿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는 하나님이 그의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가 기억날 때마다, 율법의 조항을 기억하여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그런 것을 하지 말고, 자신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임을 기억하며, 날마다 십자가를 붙드는 자가 되어야 한다. 

5절 Διὸ εἰσερχόμενος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λέγει·θυσίαν καὶ προσφορὰν οὐκ ἠθέλησας, σῶμα δὲ κατηρτίσω μοι·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개역개정)

『그러므로 이분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이르시되 희생물과 헌물은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한몸으로 예비하였다 하도다.』(헬라어 번역성경)

구약시대는 제사를 드리는 곳이 예루살렘 성전 뿐이었다. 하루에 드리는 제사도 시간상 한정되어, 죄인들도 제사를 드리고 싶어도 다 드리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사드리는 곳이 더 많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서 그들이 죄인임을 알려주실 뿐, 더 많은 제사와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 사람들이 교회건물을 성전이라고 생각해서, 성전을 계속 지어서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때, 성전의 의미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 곳이 되는 것이다. 이제 교회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모이는 그런 곳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자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그들이 모여 그들의 심령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를 함께 찬양하며,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서로 교제하는 것이다. 

6절ὁλοκαυτώματα καὶ περὶ ἁμαρτίας οὐκ εὐδόκησας.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개역개정)

『당신은 죄로 인한 번제물과 속죄제 헌물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헬라어 번역성경)

백성들이 동물들의 피로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제사를 드리지만, 그들 마음 속에 있는 죄성(원죄)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죄인들은 율법을 통해서 계명을 어기는 것을 죄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면, 그 죄를 용서를 받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계명을 어기기 전 단계인 탐심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오늘날 교회는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을 죄로 여긴다. 그러나 죄의 근원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과를 바라보는 탐심의 마음이다. 보기에 탐스럽고, 먹음직하다는 것이다. 죄의 근원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다.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서 그 원죄를 발견하고, 여인의 후손인 약속의 씨를 발견하라고 하시는데, 거의 대부분 그 약속의 씨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7-8절 τότε εἶπον· ἰδοὺ ἥκω, ἐν κεφαλίδι βιβλίου γέγραπται περὶ ἐμοῦ, τοῦ ποιῆσαι ὁ θεὸς τὸ θέλημά σου. ἀνώτερον λέγων ὅτιθυσίας καὶ προσφορὰς καὶ ὁλοκαυτώματα καὶ περὶ ἁμαρτίας οὐκ ἠθέλησας οὐδὲ εὐδόκησας, αἵτινες κατὰ νόμον προσφέρονται,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개역개정)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대해 기록된 바와 같이) 내가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니 위에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희생제사와 헌물 그리고 번제와 속죄제의 헌물은 원치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시나이다 하셨는데 그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리는 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서 내가 라고 하는 1인칭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라고 번역된 주는 성부 하나님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다는 말은 죄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러 왔다는 것이다. 동물의 피가 아니라, 단번에 십자가에서 드리는 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겠다는 것이다. 

9절 τότε εἴρηκεν· ἰδοὺ ἥκω τοῦ ποιῆσαι τὸ θέλημά σου. ἀναιρεῖ τὸ πρῶτον ἵνα τὸ δεύτερον στήσῃ,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개역개정)

『그때 이분께서 이르시기를 하나님이여 보소서 내가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며 그분께서 첫째 것을 제거하시고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첫째 것은 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를 폐한다는 것이다. 교회 건물이 제사를 드리는 성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교회들은 예배라는 말로 성전의 의미를 왜곡시킨다. 원래 성전은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리인데, 그들은 제사를 드리고 있으면서(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의 피를 요구하는 행위), 제사를 폐하고 예배만 드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것은 말씀이신 호 로고스(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호 로고스를 세운다는 말은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인 것이다. 

10절ἐν ᾧ θελήματι ἡγιασμένοι ἐσμὲν διὰ τῆς προσφορᾶς τοῦ σώματ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ἐφάπαξ.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개역개정)

『바로 이 뜻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번에 모두 희생제물로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헬라어 번역성경)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단번에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어떤 노력이나 행위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11-12절 Καὶ πᾶς μὲν ἱερεὺς ἕστηκεν καθ’ ἡμέραν λειτουργῶν καὶ τὰς αὐτὰς πολλάκις προσφέρων θυσίας, αἵτινες οὐδέποτε δύνανται περιελεῖν ἁμαρτίας,οὗτος δὲ μίαν ὑπὲρ ἁμαρτιῶν προσενέγκας θυσίαν εἰς τὸ διηνεκὲς ἐκάθισεν ἐν δεξιᾷ τοῦ θεοῦ,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개역개정)

『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반복하여 같은 희생제물들을 드리되 그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지만 오직 이 분은 죄들로 인해 영원한 희생제물로 드린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서 제사는 화목제로 드린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화목제를 드려서, 성부 하나님께 모든 죄를 가지고 가시고,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13절 τὸ λοιπὸν ἐκδεχόμενος ἕως τεθῶσιν οἱ ἐχθροὶ αὐτοῦ ὑποπόδιον τῶν ποδῶν αὐτοῦ.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엑테코메노스)』(개역개정)

『그 이후에 그분의 원수들을 자기의 발아래 꿇도록 기다리시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엑데코메노스(ἐκδεχόμενος)는 기대한다는 의미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성도들을 통해서 원수(사탄)를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꿇게 만드는 것을 기대하신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꿇게 하는 것은 성도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난 죄를 깨닫고, 그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있다. 그 탐욕이 바로 사탄인 것이다. 탐욕(옛사람)이 죽는 다는 말은 사탄이 예수의 발 아래 꿇게 만들어,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것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약속하신 첫 언약인 것이다. 

14절 μιᾷ γὰρ προσφορᾷ τετελείωκεν εἰς τὸ διηνεκὲς τοὺς ἁγιαζομένους.

『그가 거룩하게 된(하기아조메누스)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개역개정)

『이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하기아조메누스(ἁγιαζομένους.)는 과거 용법이 아니라, 현재시제다. 이미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되는 자들이다. 거룩하게 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하나가 되는 자들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온전한 제사를 드렸는데, 그와 연합되지 않는 자들은 거룩하지 않다는 말이다. 

15-16절 Μαρτυρεῖ δὲ ἡμῖν καὶ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μετὰ γὰρ τὸ εἰρηκέναι· αὕτη ἡ διαθήκη ἣν διαθήσομαι πρὸς αὐτοὺς μετὰ τὰς ἡμέρας ἐκείνας, λέγει κύριος· διδοὺς νόμους μου ἐπὶ καρδίας αὐτῶν καὶ ἐπὶ τὴν διάνοιαν αὐτῶν ἐπιγράψω αὐτούς,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개역개정)

『또한 이것에 대하여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인이 되시나니 앞서 말씀하시기를 그 날들 이후에 내가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주가 말씀하시기를 내 법들을 그들의 마음속에 두고 그들의 생각 속에 그것들을 기록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이 거룩하게 된 자에게 새언약을 맺으신다. 새언약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새언약은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한 자가 참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심령 가운데, 호 로고스가 임재하게 되고, 성도의 영도 그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음에 두고 생각에 기록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법은 성령의 법이다.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떠났던 것을 마음에 항상 바탕으로 두고, 영을 살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을 하게하는 것이다. 성도는 세상 속에서 어떤 좋은 일, 선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주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죽었던 형제와 이웃의 영을 살리는 일이 주된 것이다. 

앞서 말씀하신 것은 에스겔 11장 19-20절의 말씀이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μαρτυρει δε ημιν και το πνευμα το αγιον μετα γαρ το προειρηκεναι 

또한 이것에 대하여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인이 되시나니 앞서 이르시기를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Μαρτυρεῖ δὲ ἡμῖν καὶ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μετὰ γὰρ τὸ εἰρηκέναι·

또한 이것에 대하여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인이 되시나니 이르시기를

스테파누스 성경의 προειρηκεναι 라고 했으며, 넷슬 알란드 성경은 εἰρηκέναι·라고 했다. 앞서 말했다는 것은 에스겔 11장 19-20절의 말씀이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17절 καὶ τῶν ἁμαρτιῶν αὐτῶν καὶ τῶν ἀνομιῶν αὐτῶν οὐ μὴ μνησθήσομαι ἔτι.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개역개정)

『또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이 말은 로마서 8장 1절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이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영을 살리기 위해 사역을 위함인데, 사역을 하다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실수가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 실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이신칭의를 믿는 자들이 이 귀절을 이용하여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으면서,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18절ὅπου δὲ ἄφεσις τούτων, οὐκέτι προσφορὰ περὶ ἁμαρτίας.

『이것들을 사하셨은즉(아페시스)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개역개정)

『이제 이것들의 사면이 있는 곳에서는 더 이상 죄로 인한 희생제물이 없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아페시스(ἄφεσις)는 종의 상태에서 해방된 것을 의미한다. 종에서 해방되었으므로, 다시 값을 주고 종을 산다고 말을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죄로부터 해방된 자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것과 같이 날마다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고 하는 자들은 여전히 죄의 종이 되어 잇는 자들인 것이다. 즉 율법 아래 매인바 되어 있는 자들이다. 갈라디아서 3장 21절에서 처럼, 율법에 대해서 죽지 않으면, 죄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율법에 대해서 죽는 자가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19절Ἔχοντες οὖν, ἀδελφοί, παρρησίαν εἰς τὴν εἴσοδον τῶν ἁγίων ἐν τῷ αἵματι Ἰησοῦ,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개역개정)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은 예수의 피로 단번에 죄인을 사탄으로부터 끄집어 내어 죄로부터 자유함을 준다. 이 피가 역사하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믿는 자들이다. 죄의 그믈로부터 나온 자는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다시 죄를 짓지 않는가? 요한1서 5장 18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여기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탐욕의 죄를 의미한다. 사탄이 노리는 것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로 계속 유혹하는 것이다. 이 탐욕이 원인이 되어 짓는 모든 죄가 바로 하나님이 미워하는 죄인 것이다. 탐욕이 원인이 된 죄로 인하여 영이 죽인다. 탐욕을 부추겨서 이웃의 영을 죽이게 하는 자들도 죄인이다. 이들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영을 죽이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죄의 문제의 중심에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과 그로 인한 영의 죽음이다. 

오늘날 세상 교회는 계명을 어기는 것을 죄로 여기므로, 세상에서 잘못한 것만을 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질서에 조금만 실수하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으려고 한다. 죄의 근원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음으로 성도의 심령에 하나님 나라의 성소가 임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는 그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는다. 

20절ἣν ἐνεκαίνισεν ἡμῖν ὁδὸν πρόσφατον καὶ ζῶσαν διὰ τοῦ καταπετάσματος, τοῦτ’ ἔστιν τῆς σαρκὸς αὐτοῦ,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사륵스)니라』 (개역개정)

『이것은 이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새생명의 길을 열어두신 것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여기에서 길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나는 길이요 생명이라』고 하신 그 길이다. 휘장이 육체라는 것이다. 휘장은 율법주의의 종교의식을 의미한다. 이것이 찢어졌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의미가 바로 율법에 대해서 죽었다는 것이며, 유대인들에게 율법적 종교심을 벗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 안에 임재하시는 것이다. 

21-22절 καὶ ἱερέα μέγαν ἐπὶ τὸν οἶκον τοῦ θεοῦ, προσερχώμεθα μετὰ ἀληθινῆς καρδίας ἐν πληροφορίᾳ πίστεως ῥεραντισμένοι τὰς καρδίας ἀπὸ συνειδήσεως πονηρᾶς καὶ λελουσμένοι τὸ σῶμα ὕδατι καθαρῷ·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개역개정)

『또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이 계시므로 우리 마음이 뿌림을 받아 악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났고 우리 몸은 깨끗한 물로 씻겼으니 우리가 믿음의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된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뿌림은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을 의미하며,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하며(피뿌림),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은 마음에 탐심이라는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지 않으면, 이 우상(옛뱀)이 죽지 않는다. 악한 양심은 탐심을 의미한다. 몸은 육의 몸이다. 탐심으로 얼룩진 죄의 몸은 예수와 함께 죽는다. 세례때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죽은 자에게 하나님은 모든 죄를 씻어주신다. 

맑은 물로 씻음을 받는 것은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영의 마음이 작동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게 되는 것이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소 앞 마당의 번제단에서 동물이 희생되고(제물과 연합됨:제사장도 죽었음), 물두멍에서 손을 씻는다. 즉 죄인이었지만, 희생동물의 죽음과 연합되고, 물로 씻으므로 거룩한 자로 다시 태어나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은 성령을 의미한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에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메타 알레디네스 카르디아서 엔 플레로포리아피스테오스)은『믿음의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라고 수정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이 마음이 베드로가 말하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피뿌림은 강조되는데, 예수와 함께 죽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는 이 과정은 설명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죄인이 죄용서만 받을 뿐,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것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23절 κατέχωμεν τὴν ὁμολογίαν τῆς ἐλπίδος ἀκλινῆ, πιστὸς γὰρ ὁ ἐπαγγειλάμενος,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피스토스)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개역개정)

『또 약속하신 분께서 신실하시니 우리는 믿음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고』(헬라어 번역성경)

약속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일이다. 피스토스(πιστὸς)는 신실하다는 의미다. 즉 약속을 분명히 지키시는 분이다. 확신이 생기면,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생긴다.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텐 호몰로기안 테스 엘피도스τὴν ὁμολογίαν τῆς ἐλπίδος)는『그 소망의 고백을 하고』라는 의미다. 소망에 대한 고백을 자주 하라는 것이다. 

24절 καὶ κατανοῶμεν ἀλλήλους εἰς παροξυσμὸν ἀγάπης καὶ καλῶν ἔργων,

『서로 돌아보아(알렐루스) 사랑(파록 쉬스몬)과 선행(칼론 에르곤)을 격려하며』 (개역개정)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사역에 이르도록 격려하되』(헬라어 번역성경)

알렐루스(ἀλλήλους)는 서로 관찰하라는 말이다. 파록쉬스몬(παροξυσμὸν)은 아가페의 사랑의 자국이다. 서로 아가페 사랑의 자국이 있는지 관찰해보라는 것이다. 아가페 사랑의 자국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희생을 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성도 자신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로 예수의 죽음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칼론 에르곤(καλῶν ἔργων)을 선행으로 번역했는데, 칼론은 가치있는 일이다. 즉 성도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하는 일이다. 이러한 것을 중심으로 서로 관찰해서 서로 격려하면서 말씀을 나누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 자신에게도 해당하고, 남을 전도해서 그렇게 되도록 되게 하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다. 

25절 μὴ ἐγκαταλείποντες τὴν ἐπισυναγωγὴν ἑαυτῶν, καθὼς ἔθος τισίν, ἀλλὰ παρακαλοῦντες, καὶ τοσούτῳ μᾶλλον ὅσῳ βλέπετε ἐγγίζουσαν τὴν ἡμέραν

『모이기를 폐하는(텐 에피쉬나고겐 헤아우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개역개정)

『주께 나아가는 것을 습관처럼 하지말고 서로 권면하여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헬라어 번역성경)

텐 에피쉬나고겐 헤아우톤(τὴν ἐπισυναγωγὴν ἑαυτῶν)은 주님과 함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이 함께 모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나가는 것을 저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말을 하면서, 어떤 일이 있을 때, 주님과 함께 하지 않고, 혼자서 일을 한다는 것이다. 

26절Ἑκουσίως γὰρ ἁμαρτανόντων ἡμῶν μετὰ τὸ λαβεῖν τὴν ἐπίγνωσιν τῆς ἀληθείας, οὐκέτι περὶ ἁμαρτιῶν ἀπολείπεται θυσία,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텐 에피그노신 테스 알레데이아스)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개역개정)

『우리가 진리의 하나됨을 받은 뒤에는 죄들에 대해서 희생제물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고』(헬라어 번역성경)

텐 에피그노신 테스 알레데이아스는 진리의 하나됨이다. 하나됨이란 아는 자식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야다와 같은 개념으로 부부가 서로 아는 것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진리의 하나됨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죄가 무엇이며, 죄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고, 속량되어 죄의 그물에서 벗어나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고, 성도의 심령 속에 성소가 임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후에는 속죄의 제사가 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여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자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죄를 짓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예수의 피를 동원하여 죄를 용서받는 그런 것을 하지 말고, 처음의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세상죄는 사하심을 받는다. 두번째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했는데, 예수를 배반하고 떠나가는 자, 또는 교역자들 중에 혼합주의 종교(율법주의, 영지주의, 인본주의)에 빠져 복음을 변질시켜,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은 더 이상 십자가가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원래 이들은 말로만 예수믿고, 거듭났다고 말을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27-29절 φοβερὰ δέ τις ἐκδοχὴ κρίσεως καὶ πυρὸς ζῆλος ἐσθίειν μέλλοντος τοὺς ὑπεναντίους. ἀθετήσας τις νόμον Μωϋσέως χωρὶς οἰκτιρμῶν ἐπὶ δυσὶν ἢ τρισὶν μάρτυσιν ἀποθνῄσκει· πόσῳ δοκεῖτε χείρονος ἀξιωθήσεται τιμωρίας ὁ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καταπατήσας καὶ τὸ αἷμα τῆς διαθήκης κοινὸν ἡγησάμενος, ἐν ᾧ ἡγιάσθη, καὶ τὸ πνεῦμα τῆς χάριτος ἐνυβρίσας;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개역개정)

『대적들은 자신을 삼킬 불 같은 격노와 심판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라 모세의 율법을 멸시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긍휼을 얻지 못하고 죽었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밟고 자기를 거룩히 구별한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아니한 것으로 여기며 은혜의 성령께 욕되게 행한 자가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극심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해 보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의 보혈로 죄를 사하심을 얻었다고 믿었다가, 예수를 배반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는 자들이다. 또한 은혜의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은 예수의 복음 외에도 인간이 노력이 필요하다는 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것이 영지주의와 율법주의다. 인간 속에는 신성이 있는데,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나가야 한다든가, 예수를 믿지만, 율법의 조문도 철저히 지켜 나가야 한다는 자들이다. 이들에게는 무서운 심판(둘째 사망)이 있을 것이다. 초대교회에 이런 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도 대부분 교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30절 οἴδαμεν γὰρ τὸν εἰπόντα· ἐμοὶ ἐκδίκησις, ἐγὼ ἀνταποδώσω. καὶ πάλιν· κρινεῖ κύριος τὸν λαὸν αὐτοῦ.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개역개정)

『이 분이 말씀하시기를 원수 갚는 일은 내게 속하였으니 내가 갚아 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헬라어 번역성경)

원수는 사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 왜곡하는 자들은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는 자들이다. 원수가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이며, 교역자들이다. 

31-32절 φοβερὸν τὸ ἐμπεσεῖν εἰς χεῖρας θεοῦ ζῶντος. Ἀναμιμνῄσκεσθε δὲ τὰς πρότερον ἡμέρας, ἐν αἷς φωτισθέντες πολλὴν ἄθλησιν ὑπεμείνατε παθημάτων,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개역개정)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나 너희가 빛을 받은 뒤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냈던 이전의 날들을 기억하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영접한 후에 마귀와의 싸움에서 고난을 이겨낸 자들이 아니냐 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두려우신 심판을 생각하며, 이 잘못된 복음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33절 τοῦτο μὲν ὀνειδισμοῖς τε καὶ θλίψεσιν θεατριζόμενοι, τοῦτο δὲ κοινωνοὶ τῶν οὕτως ἀναστρεφομένων γενηθέντες.

『혹은 비방과 환난(들맆세스)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개역개정)

『한편으로는 너희가 비방과 수난으로 말미암아 구경거리가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지금 임재 속에 있는 자들을 통하여 사귀는 자들이 되었으니』(헬라어 번역성경)

들맆세신(θλίψεσιν)는 환란이 아니라, 주님이 심령 가운데, 성소에 들어오라고 압박하시는 것이다. 이런 지성소에 들어가는 기도를 하면, 주위에서 이상한 짓을 한다고 비난하는 자들이 있는데, 잘못된 복음에서 휩싸여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들과 서로 사귀어 관상기도를 잘 하도록 해라는 것이다. 

34절 καὶ γὰρ τοῖς δεσμίοις συνεπαθήσατε καὶ τὴν ἁρπαγὴν τῶν ὑπαρχόντων ὑμῶν μετὰ χαρᾶς προσεδέξασθε γινώσκοντες ἔχειν ἑαυτοὺς κρείττονα ὕπαρξιν καὶ μένουσαν.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하트파겐)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개역개정)

『너희가 잘못된 믿음의 메인 자들을 함께 동정하고 너희 믿음의 소유를 기쁨으로 움켜 잡으라 그러면 더 낫고 영원한 소유를 알게되고  받아드리게 될 것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전체적으로 번역이 잘못되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γὰρ(그리고) καὶ (왜냐하면)τοῖς(그) δεσμίοις(메인 자들에게) συνεπαθήσατε(너희가 함께 동정하다), καὶ τὴν ἁρπαγὴν(움켜지다) τῶν ὑπαρχόντων(소유하는) ὑμῶν μετὰ χαρᾶς(기쁨) προσεδέξασθε(받아드렸다), γινώσκοντες(알면서) ἔχειν(가진 것) ἑαυτοὺς(너희 자신이) ὕπαρξιν(소유를) κρείττονα(더 좋고) καὶ(그리고) μένουσαν(영구히 이루는).

이를 다시 번역하면, 『너희가 메인 자들(잘못된 믿음을 가진 자)을함께 동정하고, 너희 소유(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 그 믿음)를 기쁨으로 움켜 잡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더 낫고 영구한 소유(거듭남에 이르는 새생명)가 된다』는 것이다. 

35절 Μὴ ἀποβάλητε οὖν τὴν παρρησίαν ὑμῶν, ἥτις ἔχει μεγάλην μισθαποδοσίαν.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텐 파르레시안)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개역개정)

『그러므로 너희는 이 분과의 교제를 버리지 말라 그것이 상을 얻게 하는 것으로 큼이라.』(헬라어 번역성경)

텐 파르레시안(τὴν παρρησίαν)은 담대함이 아니라,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말을 많이 하고 듣는 것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상은 이 파르레시안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다는 것이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μη αποβαλητε ουν την παρρησιαν υμων ητις εχει μισθαποδοσιαν μεγαλην

상을 얻게 하니 그것이 큼이라.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Μὴ ἀποβάλητε οὖν τὴν παρρησίαν ὑμῶν, ἥτις ἔχει μεγάλην μισθαποδοσίαν.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스테파누스 성경은 εχει μισθαποδοσιαν μεγαλην (상을 얻게 하니 그것이 큼이라) 라고 했으며, 넷슬 알란드 성경은 ἔχει μεγάλην μισθαποδοσίαν(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라고 했다. 메갈렌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great와 같은 형용사이다. 이 형용사가 명사 앞에 오면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로 되어 큰 상이지만, 명사 뒤에 오면 서술형이 되어 상을 받는 것이 크다라는 의미가 된다. 상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상을 받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가 강조하는 것이다. 상은 크고 작은 상이 아니라 같은 상이다. 그러나 상을 받는 것 자체는 엄청난 것이다. 


36절ὑπομονῆς γὰρ ἔχετε χρείαν ἵνα τὸ θέλημα τοῦ θεοῦ ποιήσαντες κομίσησθε τὴν ἐπαγγελίαν.

『너희에게 인내(휘포모네스 ὑπομονῆς)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개역개정)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뒤에 그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해 임재안에서 인내가 필요하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휘포모네스(ὑπομονῆς)휘포(~아래)모네(머무는)는 성도의 심령 안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은 대단한 인내가 필요하다. 이게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된다는 것이다. 

37절ἔτι γὰρ μικρὸν ὅσον ὅσον, ὁ ἐρχόμενος ἥξει καὶ οὐ χρονίσει·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개역개정)

『조금만 있으면 이분께서 오실 것이요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이 귀절을 표면적으로 보면, 마치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실 호 로고스께서 오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38절ὁ δὲ δίκαιός μου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καὶ ἐὰν ὑποστείληται, οὐκ εὐδοκεῖ ἡ ψυχή μου ἐν αὐτῷ.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제세타이)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개역개정)

『이제 의인은 믿음으로 자신을 살리리라 그러나 뒤로 물러가면 내 혼이 그의 안에서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제세타이(ζήσεται)는 문법적으로 중간태로서 자기 자신을 살린다는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자기 자신(영)을 살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영적으로 살아나야만 남의 영을 살릴 수 있다. 뒤로 물러나지 말고 하나님께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믿음에 대해서 말을 하고 끝낸다. 

39절ἡμεῖς δὲ οὐκ ἐσμὲν ὑποστολῆς εἰς ἀπώλειαν ἀλλὰ πίστεως εἰς περιποίησιν ψυχῆς.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개역개정)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에 이르는 자들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믿어서 혼의 구원에 이르는 자들에게 속하느니라.』 (헬라어 번역성경)

이 믿음은 휘포모네를 할 수 있는 믿음과 그를 통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영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영이 하나님 나라의 옷(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육의 몸(옛사람)을 벗어야만 하는 것이다. 육의 몸을 벗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어야, 영의 몸(혼)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새생명이다. 그래서 영이 새생명을 입을 때, 하나님이 성령으로 인을 치시고, 선물로 성령세례를 주시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는 성도의 심령에 성소가 임재하게 되고, 호 로고스가 그 성도의 영에 들어가게 되고, 성도의 영도 호 로고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되는 비밀인 것이다. 


11장 

1절Ἔστιν δὲ πίστις ἐλπιζομένων ὑπόστασις, πραγμάτων ἔλεγχος οὐ βλεπομένων.

『믿음은 바라는(엘피조메논)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브레포메논) 않는 것들의 증거니』 (개역개정)

『믿음은 소망되어지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헬라어 번역성경)

엘피조메논(ἐλπιζομένων)은 피동형 동사로서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소망되어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소망인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소망을 믿음으로서 그 소망이 실제 이루어진다. 브레포메논(βλεπομένων)은 내가 바라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소망을 믿음으로 바라보지만, 보이지 않아도 그 믿음은 증거가 된다(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다. 

2절ἐν ταύτῃ γὰρ ἐμαρτυρήθησαν οἱ πρεσβύτερο

『선진들이 이로써(엔타우테) 증거를 얻었느니라』(개역개정)

『이것들에 의해서 장로들이 칭찬을 얻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엔 타우테(ἐν ταύτῃ)는 이것들에 의해서 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의해서 라는 것이다. 

3절 Πίστει νοοῦμεν κατηρτίσθαι τοὺς αἰῶνας ῥήματι θεοῦ, εἰς τὸ μὴ ἐκ φαινομένων τὸ βλεπόμενον γεγονέναι.

『믿음으로 모든 세계(아이오나스)가 하나님의 말씀(레마티)으로 지어진(카테르티스다이)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개역개정)

『믿음으로 우리는 모든 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부터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아이오나스(αἰῶνας)는 세계가 아니라, 세대다. 세대는 사람들이 세대 마다 살아가는 모든 세대를 의미한다. 카테르티스다이(κατηρτίσθαι)는 되어진다는 의미다. 레마티(ῥήματι)는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말씀은 창세기 3장 15절에서 말하는 여인의 후손인 씨에 대한 약속을 의미한다. 

4절 Πίστει πλείονα θυσίαν Ἅβελ παρὰ Κάϊν προσήνεγκεν τῷ θεῷ, δι’ ἧς ἐμαρτυρήθη εἶναι δίκαιος, μαρτυροῦντος ἐπὶ τοῖς δώροις αὐτοῦ τοῦ θεοῦ, καὶ δι’ αὐτῆς ἀποθανὼν ἔτι λαλεῖ.

『믿음으로(피스테이)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개역개정)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욱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을 통하여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에 대하여 증언하시느니라 그가 죽었던 그것을 통하여 지금도 말하고 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가인은 씨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생산한 곡물을 하나님께 바쳤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일을 하는 자의 모습이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 그러나 아벨은 씨의 약속을 믿으므로, 희생제사를 통해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 피스테이(Πίστει)는 바로 이 같은 것의 믿음인 것이다. 아벨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한다.

5절 Πίστει Ἑνὼχ μετετέθη τοῦ μὴ ἰδεῖν θάνατον, καὶ οὐχ ηὑρίσκετο διότι μετέθηκεν αὐτὸν ὁ θεός. πρὸ γὰρ τῆς μεταθέσεως μεμαρτύρηται εὐαρεστηκέναι τῷ θεῷ·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개역개정)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 증언되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창세기 5장 24절에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다. 동행(히브리어:와이트할레크)이라는 말은 함께 걸어가다 라는 말로 번역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다. 하나님의 언약을 가지고 있는 자라는 것이다. 

6절 χωρὶς δὲ πίστεως ἀδύνατον εὐαρεστῆσαι· πιστεῦσαι γὰρ δεῖ τὸν προσερχόμενον τῷ θεῷ ὅτι ἔστιν καὶ τοῖς ἐκζητοῦσιν αὐτὸν μισθαποδότης γίνεται.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개역개정)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그분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그들에게 기업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이 계신 것은 약속의 말씀으로 계신 것을 의미한다. 자기를 찾는 자는 씨의 약속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신다는 것이다. 

7절 Πίστει χρηματισθεὶς Νῶε περὶ τῶν μηδέπω βλεπομένων, εὐλαβηθεὶς κατεσκεύασεν κιβωτὸν εἰς σωτηρίαν τοῦ οἴκου αὐτοῦ δι’ ἧς κατέκρινεν τὸν κόσμον, καὶ τῆς κατὰ πίστιν δικαιοσύνης ἐγένετο κληρονόμος.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개역개정)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고 방주를 준비하였고 두려움 가운데 그것이 움직여졌으며 세상의 정죄를 통하여 자기 집의 구원을 얻고 믿음을 따라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믿음은 씨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 씨의 약속을 믿는 자가 노아의 가족 7명 외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120년간 회개를 외쳤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씨의 약속을 기억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아가 120년간 외쳤지만,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8절 Πίστει καλούμενος Ἀβραὰμ ὑπήκουσεν ἐξελθεῖν εἰς τόπον ὃν ἤμελλεν λαμβάνειν εἰς κληρονομίαν, καὶ ἐξῆλθεν μὴ ἐπιστάμενος ποῦ ἔρχεται.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개역개정)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아 유업으로 받게된 그곳을 향하여 나가면서 순종하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갔으며』(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은 씨의 약속을 믿고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냈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약속하셨다. 유업의 약속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순종하여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약속은 땅의 일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이루어지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9절 Πίστει παρῴκησεν εἰς γῆν τῆς ἐπαγγελίας ὡς ἀλλοτρίαν ἐν σκηναῖς κατοικήσας μετὰ Ἰσαὰκ καὶ Ἰακὼβ τῶν συγκληρονόμων τῆς ἐπαγγελίας τῆς αὐτῆς·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개역개정)

『믿음으로 그는 약속의 땅 안에서 이방인처럼 머물렀으며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가 된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 거했으며』(헬라어 번역성경)

이방의 땅은 이 세상을 의미한다. 약속의 땅은 가나안 즉 이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성도는 육체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영적인 하나님 나라에 사는 것이다.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것이다. 동일한 약속은 바로 씨의 약속이며, 그리스도인 것이다. 장막은 그리스도의 장막을 의미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은 자들이 된다. 

10절ἐξεδέχετο γὰρ τὴν τοὺς θεμελίους ἔχουσαν πόλιν ἧς τεχνίτης καὶ δημιουργὸς ὁ θεός.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개역개정)

『이는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건축하시는 터가 있는 성을 그가 기다리고 있었음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성은 성전을 의미한다. 오늘날 성도에게 심령 속에서 임재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성전을 의미한다. 과거 역사적 사실이 성경을 통해서 당시 초대 교회의 성도에게 영적으로 재조명되는 것이다. 

11절 Πίστει καὶ αὐτὴ Σάρρα στεῖρα δύναμιν εἰς καταβολὴν σπέρματος ἔλαβεν καὶ παρὰ καιρὸν ἡλικίας, ἐπεὶ πιστὸν ἡγήσατο τὸν ἐπαγγειλάμενον.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개역개정)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지났을 때에 잉태하는 힘을 받았으니 이는 그녀가 약속하신 분을 신실하게 여겼기 때문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육체로는 씨의 약속을 믿을 수 없으나, 영으로는 믿을 힘을 주신다. 사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의 어머니가 된다. 창세기 17장 15-16절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약속하신 이는 하나님이 씨의 약속을 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미쁘다는 말은 신실하다는 것이다. 

12절 διὸ καὶ ἀφ’ ἑνὸς ἐγεννήθησαν, καὶ ταῦτα νενεκρωμένου, καθὼς τὰ ἄστρα τοῦ οὐρανοῦ τῷ πλήθει καὶ ὡς ἡ ἄμμος ἡ παρὰ τὸ χεῖλος τῆς θαλάσσης ἡ ἀναρίθμητος.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개역개정)

『그러므로 죽은 자와 다름없던 한 사람으로 부터 하늘의 허다한 별들과 바닷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사람이 나왔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죽은 자와 같은 사람은 아브라함을 의미한다. 백세는 육적으로 죽은 자와 같은 몸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스스로 이같이 말했다. 

13절 Κατὰ πίστιν ἀπέθανον οὗτοι πάντες, μὴ λαβόντες τὰς ἐπαγγελίας ἀλλὰ πόρρωθεν αὐτὰς ἰδόντες καὶ ἀσπασάμενοι καὶ ὁμολογήσαντες ὅτι ξένοι καὶ παρεπίδημοί εἰσιν ἐπὶ τῆς γῆς.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개역개정)

『이 사람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붙잡았으며 그리고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으니』(헬라어 번역성경)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는 말은 그가 살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모르므로, 이 땅은 나그네의 삶이라는 것이다. 

14-16절 οἱ γὰρ τοιαῦτα λέγοντες ἐμφανίζουσιν ὅτι πατρίδα ἐπιζητοῦσιν.καὶ εἰ μὲν ἐκείνης ἐμνημόνευον ἀφ’ ἧς ἐξέβησαν, εἶχον ἂν καιρὸν ἀνακάμψαι· νῦν δὲ κρείττονος ὀρέγονται, τοῦτ’ ἔστιν ἐπουρανίου. διὸ οὐκ ἐπαισχύνεται αὐτοὺς ὁ θεὸς θεὸς ἐπικαλεῖσθαι αὐτῶν· ἡτοίμασεν γὰρ αὐτοῖς πόλιν.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개역개정)

『그런 것들을 말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나타내느니라 참으로 그들이 떠나온 본향이 기억되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그들에게 있었으려니와 그들은 이제 더 좋은 것을 사모하니 곧 하늘의 본향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분께서 참으로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앞의 그들은 아브라함 등 이전 사람들이다. 뒤부분의 그들(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은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본향은 영적인 하나님 나라다. 아브라함 등 이전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잘 몰랐는데, 만일 알았다면, 그 당시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하나님 나라가 바로 심령 속에 임하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본향을 사모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성은 심령 속의 성전을 의미한다. 

17절 Πίστει προσενήνοχεν Ἀβραὰμ τὸν Ἰσαὰκ πειραζόμενος καὶ τὸν μονογενῆ προσέφερεν, ὁ τὰς ἐπαγγελίας ἀναδεξάμενος,

『아브라함은 시험(페이라조메노스)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에팡겔리아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개역개정)

『아브라함은 유혹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서 그 외아들을 제물로 드렸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페이라조메노(πειραζόμενος)는 유혹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했을 때, 마귀의 유혹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마귀의 유혹이 있었으나, 그는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 이는 씨의 약속을 믿고, 비록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어가신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에팡겔리아스는 씨(그리스도)의 약속이다. 

18-19절 πρὸς ὃν ἐλαλήθη ὅτι ἐν Ἰσαὰκ κληθήσεταί σοι σπέρμα, λογισάμενος ὅτι καὶ ἐκ νεκρῶν ἐγείρειν δυνατὸς ὁ θεός, ὅθεν αὐτὸν καὶ ἐν παραβολῇ ἐκομίσατο.

『그에게 이미 말씀(엘랄라데)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개역개정)

『그에게 언약으로 말씀된 것 같이 이삭 안에서 네 씨가 부름을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능히 이삭을 일으키실 줄로 그가 생각하였으므로 또한 그는 죽은 자들로부터 모형 안에서 받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엘랄레데(ἐλαλήθη)는 언약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이삭을 통하여, 많은 자손을 준다고 했는데, 번제를 드리면, 이삭은 불에 타 죽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삭을 부활시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믿음 속에는 모두 씨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자손은 씨의 약속을 받은 자손들이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삭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20절 Πίστει καὶ περὶ μελλόντων εὐλόγησεν Ἰσαὰκ τὸν Ἰακὼβ καὶ τὸν Ἠσαῦ.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개역개정)

『믿음으로 이삭은 다가올 일들에 관하여 야곱과 에서를 축복하였으며』(헬라어 번역성경)

이삭이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한 것은 이삭이 씨의 약속을 믿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그에 관한 계시의 말씀을 듣고 축복했다는 의미가 된다. 씨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과 관련해서, 에서는 세상의 나라(영적 이방), 야곱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영적 이스라엘)가 되는 것이다. 

21절 Πίστει Ἰακὼβ ἀποθνῄσκων ἕκαστον τῶν υἱῶν Ἰωσὴφ εὐλόγησεν καὶ προσεκύνησεν ἐπὶ τὸ ἄκρον τῆς ῥάβδου αὐτοῦ.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개역개정)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고 그의 지팡이 머리 위에서 경배하였으며』(헬라어 번역성경)

창세기 48장 14절에서,『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샤칼)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야곱이 므낫세를 오른손으로 머리에 얹으면, 요셉이 보기에는 왼쪽으로 보인다. 율법에는 장자가 복을 받는다. 그래서 요셉은 므낫세를 야곱의 우편에 두고, 에브라임를 좌편에 두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 라고 말을 했다. 야곱은 사람들의 생각을 나도 아는데, 이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다. 땅의 장자는 첫사람 아담이고, 하늘의 장자는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는 자가 복을 받는 것이다. 에서가 육의 눈으로 볼 때 장자였지만, 영의 눈으로는 야곱이 장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축복을 받는다.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22절 Πίστει Ἰωσὴφ τελευτῶν περὶ τῆς ἐξόδου τῶν υἱῶν Ἰσραὴλ ἐμνημόνευσεν καὶ περὶ τῶν ὀστέων αὐτοῦ ἐνετείλατο.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개역개정)

『믿음으로 요셉은 죽으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 할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자기 뼈들에 관해 명령을 주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이 말은 창세기 50장 24-25절의 말씀이다. 씨의 약속을 믿고 있는 요셉(그리스도의 상징)은 이스라엘 자손들(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애굽(세상)을 떠나 가나안(하나님 나라)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과 자기의 뼈(십자가의 죽음)를 성도들의 심령 속에 묻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라는 것이다. 

23절 Πίστει Μωϋσῆς γεννηθεὶς ἐκρύβη τρίμηνον ὑπὸ τῶν πατέρων αὐτοῦ, διότι εἶδον ἀστεῖον τὸ παιδίον καὶ οὐκ ἐφοβήθησαν τὸ διάταγμα τοῦ βασιλέως.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개역개정)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아이가 특이한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니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모세의 부모도 씨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모세의 부모는 두려워하지 않고, 모세를 석달 동안 숨겼다는 것이다. 

24-26절 Πίστει Μωϋσῆς μέγας γενόμενος ἠρνήσατο λέγεσθαι υἱὸς θυγατρὸς Φαραώ, μᾶλλον ἑλόμενος συγκακουχεῖσθαι τῷ λαῷ τοῦ θεοῦ ἢ πρόσκαιρον ἔχειν ἁμαρτίας ἀπόλαυσιν,μείζονα πλοῦτον ἡγησάμενος τῶν Αἰγύπτου θησαυρῶν τὸν ὀνειδισμὸν τοῦ Χριστοῦ· ἀπέβλεπεν γὰρ εἰς τὴν μισθαποδοσίαν.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개역개정)

『믿음으로 모세가 장성였을 때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하고 잠시 죄를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으며 그리스도가 받으신 모욕 같은 것을 애굽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받을 기업을 향하여 찾고 있었음이라.』(헬라어 번역성경)

모세도 마찬가지였다. 모세는 계시로 그 씨의 약속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었다. 그가 받는 수모가 그리스도의 모욕과 같은 것임을 의미한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말한다.『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27-29절Πίστει κατέλιπεν Αἴγυπτον μὴ φοβηθεὶς τὸν θυμὸν τοῦ βασιλέως· τὸν γὰρ ἀόρατον ὡς ὁρῶν ἐκαρτέρησεν. Πίστει πεποίηκεν τὸ πάσχα καὶ τὴν πρόσχυσιν τοῦ αἵματος, ἵνα μὴ ὁ ὀλοθρεύων τὰ πρωτότοκα θίγῃ αὐτῶν. Πίστει διέβησαν τὴν ἐρυθρὰν θάλασσαν ὡς διὰ ξηρᾶς γῆς, ἧς πεῖραν λαβόντες οἱ Αἰγύπτιοι κατεπόθησα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개역개정)

『믿음으로 그는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애굽을 떠났으며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이를 보는 것 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느니라 믿음으로 그는 유월절과 피 뿌리는 것을 지켰으니 이것은 처음 난 것들을 멸하시는 자가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마른 땅을 건너듯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그것을 시도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으며』(헬라어 번역성경)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해야 함을 계시를 통해서 알았으며, 그는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바로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장차 도래할 씨의 약속을 나타내기 위해, 유월절 피뿌림 예식을 미리 보여주었다. 피뿌림 예식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으므로, 죄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홍해를 건너는 것은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임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이 씨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것을 말하고 있다. 

30절 Πίστει τὰ τείχη Ἰεριχὼ ἔπεσαν κυκλωθέντα ἐπὶ ἑπτὰ ἡμέρας.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개역개정)

『믿음으로 그들이 칠일 동안 여리고 성벽 주위를 돌매 성벽이 무너져 내렸으며』(헬라어 번역성경)

씨의 약속을 바라보니, 여리고 성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육적인 몸(하나님 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함께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도의 심령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이것을 계시로 보았다는 것이다. 

31절 Πίστει Ῥαὰβ ἡ πόρνη οὐ συναπώλετο τοῖς ἀπειθήσασιν δεξαμένη τοὺς κατασκόπους μετ’ εἰρήνης.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개역개정)

『믿음으로 매춘부 라합은 정탐꾼들을 평안히 받아들이므로 순종하지 않은 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헬라어 번역성경)

라합은 이방인이면서 언제 정복될지 모르는 매춘부였지만, 그녀는 이미 계시를 통해 장차 오실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이 언약 백성을 구원할 것이라는 것이다.『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그 믿음의 고백을 담아 정탐꾼들에게 간구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이 두 정탐꾼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약조한다. 『누설하지 않으면 반드시 살려 줄 것이다』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에 들어 올때에, 붉은 줄을 창문에 매어 두면 네 집은 구원받을 것이다 라고 약속했다. 이 장면은 출애굽사건을 연상시킨다. 애굽에서 첫 유월절 양의 피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창문에 맨 붉은 줄이 구원하여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라는 증표로 쓰였다. 라합은 두 정탐꾼을 사흘 동안 숨겨두고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도왔다. 그리고 약속대로 붉은 줄을 창문에 매고 기다렸다. 

32-34절 Καὶ τί ἔτι λέγω; ἐπιλείψει με γὰρ διηγούμενον ὁ χρόνος περὶ Γεδεών, Βαράκ, Σαμψών, Ἰεφθάε, Δαυίδ τε καὶ Σαμουὴλ καὶ τῶν προφητῶν, οἳ διὰ πίστεως κατηγωνίσαντο βασιλείας, εἰργάσαντο δικαιοσύνην, ἐπέτυχον ἐπαγγελιῶν, ἔφραξαν στόματα λεόντων, ἔσβεσαν δύναμιν πυρός, ἔφυγον στόματα μαχαίρης, ἐδυναμώθησαν ἀπὸ ἀσθενείας, ἐγενήθησαν ἰσχυροὶ ἐν πολέμῳ, παρεμβολὰς ἔκλιναν ἀλλοτρίων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개역개정)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와 또 다윗과 사무엘과 예언자들에 관하여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라 그들이 믿음을 통해 왕국들을 정복하기도 하며 의를 이루기도 하며 약속들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맹렬한 불을 끄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싸움에서 용맹하게 되어 이방의 군대들과 싸워 물리치기도 하며』(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들을 하신다. 믿음은 바로 씨의 약속을 가진 자다. 오늘날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성도의 심령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는 자를 하나님이 보호하신다. 

35-38절Ἔλαβον γυναῖκες ἐξ ἀναστάσεως τοὺς νεκροὺς αὐτῶν· ἄλλοι δὲ ἐτυμπανίσθησαν οὐ προσδεξάμενοι τὴν ἀπολύτρωσιν, ἵνα κρείττονος ἀναστάσεως τύχωσιν· ἕτεροι δὲ ἐμπαιγμῶν καὶ μαστίγων πεῖραν ἔλαβον, ἔτι δὲ δεσμῶν καὶ φυλακῆς· ἐλιθάσθησαν, ἐπρίσθησαν, ἐν φόνῳ μαχαίρης ἀπέθανον, περιῆλθον ἐν μηλωταῖς, ἐν αἰγείοις δέρμασιν, ὑστερούμενοι, θλιβόμενοι, κακουχούμενοι, ὧν οὐκ ἦν ἄξιος ὁ κόσμος, ἐπὶ ἐρημίαις πλανώμενοι καὶ ὄρεσιν καὶ σπηλαίοις καὶ ταῖς ὀπαῖς τῆς γῆς

『여자들은 자기의(아우톤 αὐτῶν) 죽은 자들을(투스 베크루스 τοὺς νεκροὺς)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개역개정)

『여인들은 그들의 죽은 남편들을 부활로 받아드렸으며 다른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으려고 고문을 당하되 구출받기를 원치 아니하였으며 또 다른 이들은 심한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겪었으며 돌로 맞기도 하고 시험을 받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며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으니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게 가치가 없느니라) 그들이 사막과 산과 동굴과 땅굴에서 방황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아우톤(αὐτῶν)은 3인칭(여성) 복수 속격이다. 그들은 여인들 자신을 의미한다. 투스(τοὺς)베크루스(νεκροὺς:죽음)는 가족 중에 남편의 죽음을 의미한다. 투스는 문법적으로 남성 복수로서 기독교 초기 박해시대 때의 어떤 여인들은 남편들의 순교를 부활에 대한 소망으로 용납했다. 주님이 부활하신 사건이 자연발생적으로 교회 공동체를 이루게 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 신자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불렸다. 기독교 출발의 결정적 동기는 부활이었다. 그런데 유대교로부터도, 로마정권으로부터도 박해를 당했다. 그래서 많은 순교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그 뼈아픈 순교의 현실을 초대교회의 여인들은 부활의 소망으로 이겼다. 이렇게 참혹하게 죽지만, 오래지 않아 영광의 부활체로 다시 살아난다는 소망과 믿음으로 현실을 감내했다. 그래서 그 극심한 고난과 박해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39-40절 Καὶ οὗτοι πάντες μαρτυρηθέντες διὰ τῆς πίστεως οὐκ ἐκομίσαντο τὴν ἐπαγγελίαν, τοῦ θεοῦ περὶ ἡμῶν κρεῖττόν τι προβλεψαμένου, ἵνα μὴ χωρὶς ἡμῶν τελειωθῶσιν.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개역개정)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통해 좋은 평판을 얻었으되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하였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계획하사 우리를 떠나서는 그들이 완전하게 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이러한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의 증거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인 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초대 교회 당시의 신자들)에게는 더 좋은 약속(하나님 나라의 상속)을 계획하셨다는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은 약속이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나, 우리는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부활신앙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함을 믿는 자들은 그들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므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은 온전한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졌는데, 초대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는 은혜를 주셨는데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교회 사람들에게 믿음의 선진과 같은 믿음을 가져라는 것이다. 


12장 

1절 Τοιγαροῦν καὶ ἡμεῖς τοσοῦτον ἔχοντες περικείμενον ἡμῖν νέφος μαρτύρων, ὄγκον ἀποθέμενοι πάντα καὶ τὴν εὐπερίστατον ἁμαρτίαν, δι’ ὑπομονῆς τρέχωμεν τὸν προκείμενον ἡμῖν ἀγῶνα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디 휘포모네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개역개정)

『그러므로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큰 구름 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리고 하나님 보좌에 나아감으로 우리 앞에 놓인 경기장을 달리며』(헬라어 번역성경)

많은 증인은 믿음의 선진들을 의미한다. 디 휘포모네스(δι’ ὑπομονῆς)는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 머무는 것(안식)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해결하셨다. 그래서 성도는 더 이상 이것들에 얽매이지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심령 속에서 임재하신 성전이다. 여기에 나아가는 것이 마치 경주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2절ἀφορῶντες εἰς τὸν τῆς πίστεως ἀρχηγὸν καὶ τελειωτὴν Ἰησοῦν, ὃς ἀντὶ τῆς προκειμένης αὐτῷ χαρᾶς ὑπέμεινεν σταυρὸν αἰσχύνης καταφρονήσας ἐν δεξιᾷ τε τοῦ θρόνου τοῦ θεοῦ κεκάθικεν.

『믿음의 주(테스 피스테오스 아르케콘)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프로케이메노스) 기쁨(카라스)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휘페메이넨)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개역개정)

『우리 믿음의 우두머리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는 자의 기쁨을 대신하여 그 앞에 놓여있는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더니 이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심령 안에서 임재하신 호 로고스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분이 믿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믿음은 인간이 자기가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은 바로 씨의 약속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씨의 약속이 된다. 예수님이 믿음의 우두머리가 되시며, 성도로 하여금 온전한(완성된) 믿음에 이르게 하신다. 그래서 이 믿음을 주신 예수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테스 피스테오스 아르케콘(τῆς πίστεως ἀρχηγὸν)은 믿음의 우두머리(리더)다. 프로케이메네스 아우토 카라스(προκειμένης αὐτῷ χαρᾶς)는 그 앞에 놓여있는 기쁨을 대신하여 라는 의미다. 『기쁨(카라스)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휘페메이넨)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라는 말에서, 참으사로 번역된 휘페메이넨은 기쁨과 연결된다. 누구를 위한 기쁨인가 하면, 바로 휘포모네가 되는 성도를 위한 기쁨이라는 것이다. 성도가 휘포모네를 하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기쁨이 되는데, 이를 위해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더니 라는 것이다. 휘페메이넨을 참으사 라고 번역한 것이 잘못된 것이다. 

3절ἀναλογίσασθε γὰρ τὸν τοιαύτην ὑπομεμενηκότα ὑπὸ τῶν ἁμαρτωλῶν εἰς ἑαυτὸν ἀντιλογίαν, ἵνα μὴ κάμητε ταῖς ψυχαῖς ὑμῶν ἐκλυόμενοι.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휘포메메네코타) 이를 생각하라』(개역개정)

『죄인들이 그분을 대적한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게 하신 것을 깊이 생각할지니 이것은 너희가 너희 혼 속에서 지치고 기진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이 있지만, 휘포모네(성도가 심령 속의 보좌에 나아가는 것)하게 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가 휘포모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참으신으로 번역된 휘포메메네코다(ὑπομεμενηκότα)는 보좌에 들어가는 인내를 의미한다. 프슈카이스(ψυχαῖς) 는 혼이다. 

4절 Οὔπω μέχρις αἵματος ἀντικατέστητε πρὸς τὴν ἁμαρτίαν ἀνταγωνιζόμενοι.

『너희가 죄(하마르티안)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개역개정)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였노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마르티안(ἁμαρτίαν)은 과녁을 벗어나다 라는 의미다. 히브리어에서 죄는 길을 잘못들다 라고 되어있다. 죄는 하나님을 벗어나는 것이 모두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 인간이 된 것이 죄라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사탄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죄의 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벗고, 하나님께 나가라는 것이다. 죄와 싸우는 개념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휘포모네)이다. 휘포모네를 하지 않는 자는 여전히 옛사람이 성도를 괴롭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보모와 자식간의 비유로 설명될 수 있다. 거듭나서 새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아이의 태어남으로 비유될 수 있다. 갓난 아이는 부모를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는 점차 부모를 알아보지만, 부모가 바라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커서 사춘기가 되면 아이의 행동은 부모가 바라 볼 때, 점점 더 심각해진다. 그래서 부모는 규제와 훈육을 통해서 아이를 통제하고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아이를 버리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아이가 성년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부모가 사업가라면 성년이 된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줄려고 할 것이다. 휘포모네는 부모와 자식간에 인격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인격적 대화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형성된다. 여기에서 죄는 아이가 부모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5절 καὶ ἐκλέλησθε τῆς παρακλήσεως, ἥτις ὑμῖν ὡς υἱοῖς διαλέγεται· υἱέ μου, μὴ ὀλιγώρει παιδείας κυρίου μηδὲ ἐκλύου ὑπ’ αὐτοῦ ἐλεγχόμενος·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파이데이아스)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엘렝코메노스)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개역개정)

『또한 아들들에게 하듯 너희에게 말씀하시는 권면의 말씀을 너희가 잊었도다 이르시되 내 아들아 너는 주의 훈계를 멸시하지 말며 그분께 책망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헬라어 번역성경)

파이데이아스(παιδείας)는 훈계라는 의미다. 엘렝코메노스(ἐλεγχόμενος)는 틀린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꾸지람 하듯이, 휘포모네를 할 때, 하나님이 성도에게 잘못된 것이 있으면, 틀린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6절ὃν γὰρ ἀγαπᾷ κύριος παιδεύει, μαστιγοῖ δὲ πάντα υἱὸν ὃν παραδέχεται.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아가파) 자를 징계하시고(파이데이아스:훈계)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마스티고이)이라 하였으니』 (개역개정)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친히 훈계하시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셨느니라.』 (헬라어 번역성경)

앞부분에서, 주께서 사랑하시나 그를 훈계하시고 라는 말이다. 아가파는 피값을 주고 산 자, 성도의 입장에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다시 태어난 자다. 거듭나서 성령세례를 받으면, 그 때부터 하나님은 영적 훈련을 시키시는 것이다. 마스티고이(μαστιγοῖ)는 사랑의 매와 같은 것이다. 파이듀에이(παιδεύει)는 훈계이다.

7절 εἰς παιδείαν ὑπομένετε, ὡς υἱοῖς ὑμῖν προσφέρεται ὁ θεός. τίς γὰρ υἱὸς ὃν οὐ παιδεύει πατήρ;

『너희가 참음(휘포모네테)은 징계를 받기(에이스 파이데이안)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개역개정)

『너희가 하나님 보좌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아들을 대우하듯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자가 무슨 아들이냐』(헬라어 번역성경)

휘포메네테(ὑπομένετε)는 참음이 아니라, 심령 속에 계시는 보좌에 나아가는 것이다. 에이스 파이데이안(εἰς παιδείαν)는 사랑의 매라고 볼 수 있다. 즉 사랑의 매 속에서, 휘포모네가 되는 것이다. 왜 주님이 사랑의 매를 성도들에게 드는가? 세상 속에서 자기의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일이란, 죽었던 영을 살리는데는 관심없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의 모습이다. 

8-9절 εἰ δὲ χωρίς ἐστε παιδείας ἧς μέτοχοι γεγόνασιν πάντες, ἄρα νόθοι καὶ οὐχ υἱοί ἐστε. εἶτα τοὺς μὲν τῆς σαρκὸς ἡμῶν πατέρας εἴχομεν παιδευτὰς καὶ ἐνετρεπόμεθα· οὐ πολὺ [δὲ] μᾶλλον ὑποταγησόμεθα τῷ πατρὶ τῶν πνευμάτων καὶ ζήσομεν;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개역개정)

『그들 모두가 그렇게 되었듯이 만일 너희에게 징계가 없으면 너희가 사생아요 아들이 아니니라 뿐만 아니라 우리 육체의 아버지들이 우리를 바로잡아도 우리가 그들을 공경하였거늘 영들의 아버지께 우리가 더욱 복종하고 살아야 하지 아니하겠느냐』(헬라어 번역성경)

육신의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를 비교한다. 사랑의 매가 없다면,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신의 부모에게도 순종하는데, 왜 하나님에게는 더욱 순종하지 못하느냐 라는 것이다. 

10절 οἱ μὲν γὰρ πρὸς ὀλίγας ἡμέρας κατὰ τὸ δοκοῦν αὐτοῖς ἐπαίδευον, ὁ δὲ ἐπὶ τὸ συμφέρον εἰς τὸ μεταλαβεῖν τῆς ἁγιότητος αὐτοῦ.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개역개정)

『진실로 잠시 그들은 자신들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 아들을 징계하였거니와 그분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시나니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거룩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육신의 부모는 자신의 뜻에 맞게 징계를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징계하는 것이다. 우리의 유익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거룩에 참여한다는 말은 인간이 스스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안에 임재하신 호 로고스로 인해서 거룩에 참여하는 것이다. 휘포모네 속으로 들어가 호 로고스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 대제사장은 거룩해져야만 한다. 성도가 휘포모네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휘포모네가 된다. 

11절 πᾶσα δὲ παιδεία πρὸς μὲν τὸ παρὸν οὐ δοκεῖ χαρᾶς εἶναι ἀλλὰ λύπης, ὕστερον δὲ καρπὸν εἰρηνικὸν τοῖς δι’ αὐτῆς γεγυμνασμένοις ἀποδίδωσιν δικαιοσύνης.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게김나스메노이스)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개역개정)

『모든 징계는 그 당시에는 기쁘게 보이지 아니하고 슬프게 보이나 그럼에도 나중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단련된 자들에게 의와 화평의 열매를 맺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게귐나스메노이스(γεγυμνασμένοις)는 벌거벗고 훈련받는다는 의미다. 이 훈련이 매우 세다는 의미다. 그 훈련을 통해서 평강과 의 열매를 맺는다. 

12-13절 Διὸ τὰς παρειμένας χεῖρας καὶ τὰ παραλελυμένα γόνατα ἀνορθώσατε, καὶ τροχιὰς ὀρθὰς ποιεῖτε τοῖς ποσὶν ὑμῶν, ἵνα μὴ τὸ χωλὸν ἐκτραπῇ, ἰαθῇ δὲ μᾶλλον.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개역개정)

『그러므로 늘어뜨린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해 곧은 길을 만들지니 저는 다리가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려 함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사역을 손과 발로 비유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휘포모네를 통해서 성도의 연약한 것을 일으켜 세워 하나님의 사역을 하게 하는 것이다. 휘포모네를 통해서 사역을 하는 그 발을 올바르게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힘을 얻어서 올바른 사역을 할 수 있게 된다. 

14절 Εἰρήνην διώκετε μετὰ πάντων καὶ τὸν ἁγιασμόν, οὗ χωρὶς οὐδεὶς ὄψεται τὸν κύριον,

『모든 사람과 더불어(메타 판톤)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개역개정)

『모든 사람과 함께 화평과 거룩함을 따르라 그것들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메타 판톤(μετὰ πάντων)은『~와 함께』라는 의미다. 모든 사람과 함께 하나님의 화평과 거룩을 추구하라는 의미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심적인 말이다. 이게 된 후에 사역을 할 수 있다. 화평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나님과 화평이 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명으로 부활되고, 부활된 성도의 심령에 호 로고스가 올 때, 성도는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15절ἐπισκοποῦντες μή τις ὑστερῶν ἀπὸ τῆς χάριτος τοῦ θεοῦ, μή τις ῥίζα πικρίας ἄνω φύουσα ἐνοχλῇ καὶ δι’ αὐτῆς μιανθῶσιν πολλοί,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피크리아스 아노 퓌우사) 괴롭게 하여(에노클레)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개역개정)

『부지런히 살펴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게 하고 쓴 뿌리가 돋아나 너희가 괴로움을 당하거나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럽게 되지 않도록 할지니』(헬라어 번역성경)

히포모네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 피크리아스 아노 퓌우사(πικρίας ἄνω φύουσα)는 위(하나님)로부터 나오는 쓴 뿌리라는 것이다. 히포모네가 안되는 사람은 간혹 하나님에 대해서 쓴 뿌리(안좋은 생각)가 난다는 것이다. 신도가 자기 뜻대로 안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이다. 에노클레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좋지 않은 말을 하게 되고, 이를 듣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16-17절 μή τις πόρνος ἢ βέβηλος ὡς Ἠσαῦ, ὃς ἀντὶ βρώσεως μιᾶς ἀπέδετο τὰ πρωτοτόκια ἑαυτοῦ. ἴστε γὰρ ὅτι καὶ μετέπειτα θέλων κληρονομῆσαι τὴν εὐλογίαν ἀπεδοκιμάσθη, μετανοίας γὰρ τόπον οὐχ εὗρεν καίπερ μετὰ δακρύων ἐκζητήσας αὐτήν.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개역개정)

『이것은 음행하는 자나 혹은 먹을 것을 위해 자기의 장자권을 판 에서와 같이 속된 자가 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 뒤에 그가 기업을 상속받고자 하였으되 거절당하였으니 그가 눈물을 흘리고 염려하며 뜻을 돌릴 곳을 구하였으나 그것을 거절당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음행하는 자는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복음과 다른 것을 섞는 자들을 의미한다. 복음에 인본주의, 영지주의, 율법주의를 혼합시킨다. 그리고 에서의 예를 들어서, 하나님 나라 상속의 은혜를 돈으로 파는 자들이다. 성령을 받게 한다고 사람들을 모아서 속이고, 재산을 바치게 하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두가지의 사례를 통해서, 이러한 자들은 성령훼방죄를 범하는 자들로, 회개의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μη τις πορνος η βεβηλος ως ησαυ ος αντι βρωσεως μιας απεδοτο τα πρωτοτοκια αυτου

이것은 음행하는 자나 혹은 먹을 것을 위해 자기의 장자권을 판 에서와 같이 속된 자가 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μή τις πόρνος ἢ βέβηλος ὡς Ἠσαῦ, ὃς ἀντὶ βρώσεως μιᾶς ἀπέδετο τὰ πρωτοτόκια ἑαυτοῦ.

이것은 음행하는 자나 혹은 먹을 것을 위해 자기 자신의 장자권을 판 에서와 같이 속된 자가 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스테파누스 성경은 자기의 장자권인데, 넷슬 알란드 성경은 자기 자신의 장자권으로 표현되었다. 


18-19절 Οὐ γὰρ προσεληλύθατε ψηλαφωμένῳ καὶ κεκαυμένῳ πυρὶ καὶ γνόφῳ καὶ ζόφῳ καὶ θυέλλῃ καὶ σάλπιγγος ἤχῳ καὶ φωνῇ ῥημάτων, ἧς οἱ ἀκούσαντες παρῃτήσαντο μὴ προστεθῆναι αὐτοῖς λόγον,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개역개정)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은 산에 이르지 아니하였고 깜깜함과 어둠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씀 소리에 이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그 음성을 들은 자들은 더 이상 자기들에게 말씀하지 말기를 간청하였으니』(헬라어 번역성경)

출애굽한 백성들이 시내산(호렙산) 아래 모였다. 그 산에는 불이 붙고, 폭풍과 나팔소리가 백성들에게 들려서 두려워 감히 산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모세만 산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할 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1절 οὐκ ἔφερον γὰρ τὸ διαστελλόμενον· κἂν θηρίον θίγῃ τοῦ ὄρους, λιθοβοληθήσεται· καί, οὕτως φοβερὸν ἦν τὸ φανταζόμενον, Μωϋσῆς εἶπεν· ἔκφοβός εἰμι καὶ ἔντρομος.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개역개정)

『그들은 주께서 짐승 하나라도 그 산에 닿기만 하면 돌로 맞거나 화살로 꿰뚫림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견디지 못하였느니라 그 광경이 이같이 무서웠으므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짐승도 당하고, 백성들도 무서워 떨었지만, 모세도 두렵고 떨린다고 말했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ουκ εφερον γαρ το διαστελλομενον καν θηριον θιγη του ορους λιθοβοληθησεται η βολιδι κατατοξευθησεται

그들은 주께서 짐승 하나라도 그 산에 닿기만 하면 돌로 맞거나 화살로 꿰뚫림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견디지 못하였느니라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οὐκ ἔφερον γὰρ τὸ διαστελλόμενον· κἂν θηρίον θίγῃ τοῦ ὄρους, λιθοβοληθήσεται·

그들은 주께서 짐승 하나라도 그 산에 닿기만 하면 돌로 맞으리라 하신 명령을 견디지 못하였느니라

스테파누스 성경은 화살로 꿰뚤림을 당하리라 라는 부분이 있으나, 넷슬 알란드 성경은 없다.


22-23절ἀλλὰ προσεληλύθατε Σιὼν ὄρει καὶ πόλει θεοῦ ζῶντος, Ἰερουσαλὴμ ἐπουρανίῳ, καὶ μυριάσιν ἀγγέλων, πανηγύρει καὶ ἐκκλησίᾳ πρωτοτόκων ἀπογεγραμμένων ἐν οὐρανοῖς καὶ κριτῇ θεῷ πάντων καὶ πνεύμασιν δικαίων τετελειωμένων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개역개정)

『그러나 너희는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들의 무리와 총회와 하늘 안에 기록된 처음 난 자들의 교회와 모든 것의 심판자 되시는 하나님과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헬라어 번역성경)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시내산과 같은 공의 의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시온 산에 계시는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교회 안에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거듭난 성도)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거듭나지 못한 신도)가 있다. 안에 있는 자는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지만, 밖에 있는 자는 공의의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시온산으로 가신 이유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러 오라는 것이다. 시온산에는 언약궤가 있으며, 그 위에는 시온좌가 있다. 동물의 희생 제사(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오라는 의미다.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의인의 영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휘포모네를 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24절 καὶ διαθήκης νέας μεσίτῃ Ἰησοῦ καὶ αἵματι ῥαντισμοῦ κρεῖττον λαλοῦντι παρὰ τὸν Ἅβελ.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개역개정)

『새 언약의 중재자이신 예수와 아벨의 것보다 더 나은 것들을 말하는  뿌리는 피에 이르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아벨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여주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신다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25절 Βλέπετε μὴ παραιτήσησθε τὸν λαλοῦντα· εἰ γὰρ ἐκεῖνοι οὐκ ἐξέφυγον ἐπὶ γῆς παραιτησάμενοι τὸν χρηματίζοντα, πολὺ μᾶλλον ἡμεῖς οἱ τὸν ἀπ’ οὐρανῶν ἀποστρεφόμενοι,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개역개정)

『너희는 조심하여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 말씀하신  분을 거역한 그들도 피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하늘로부터 경고 말씀하시는 분에게서 돌아선다면 더욱 피하지 못하리로다.』(헬라어 번역성경)

너희라는 대상은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교회 안의 유대인 신도들을 대상으로 말한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섭게 대한 이유는 백성들이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절하고, 애굽을 동경하는 그런 일들이 있었다. 그 때는 땅(시내산)에서 백성들에게 경고를 했지만, 이제는 하늘에서 경고한다는 것이다. 구약시대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징계를 받았는데, 이제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받았으면서도, 불순종하면(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복음의 진리를 다른 것과 섞는 것)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26절 οὗ ἡ φωνὴ τὴν γῆν ἐσάλευσεν τότε, νῦν δὲ ἐπήγγελται λέγων· ἔτι ἅπαξ ἐγὼ σείσω οὐ μόνον τὴν γῆν ἀλλὰ καὶ τὸν οὐρανόν.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개역개정)

『그때에는 그분의 음성이 땅을 흔들었거니와 이제는 그분께서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땅뿐만 아니라 하늘도 한 번 더 흔들것이라 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구약시대는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진동했지만, 성도의 심령 속에 성육신 하여, 임재하는 것은 하늘이 진동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27절 τὸ δὲ ἔτι ἅπαξ δηλοῖ [τὴν] τῶν σαλευομένων μετάθεσιν ὡς πεποιημένων, ἵνα μείνῃ τὰ μὴ σαλευόμενα.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개역개정)

『이 또 한 번 더 라는 말씀은 흔들릴 수 없는 자들을 남아 있게 하시려고 창조하신 것들 가운데 흔들리는 자들을 제거하심으로 표적을 나타내 보여 주나니』(헬라어 번역성경)

이 말씀을 예수님의 재림과 연계시키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심령 속에 호 로고스의 임재하심이 없는 자들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이 전에는 믿음의 선진들은 호 로고스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성도의 심령에 성령의 역사로 호 로고스가 임재(진동하는 것으로 표현)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전이다. 이것이 단 한번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 

28절 Διὸ βασιλείαν ἀσάλευτον παραλαμβάνοντες ἔχωμεν χάριν, δι’ ἧς λατρεύωμεν εὐαρέστως τῷ θεῷ μετὰ εὐλαβείας καὶ δέους·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개역개정)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헬라어 번역성경)

은혜는 휘포모네가 되는 은혜다. 그래서 거룩해지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다. 데우스(δέους)는 무서움으로 번역되는데, 헬라어 성경에서 차이가 있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διο βασιλειαν ασαλευτον παραλαμβανοντες εχωμεν χαριν δι ης λατρευωμεν ευαρεστως τω θεω μετα αιδους και ευλαβειας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Διὸ βασιλείαν ἀσάλευτον παραλαμβάνοντες ἔχωμεν χάριν, δι’ ἧς λατρεύωμεν εὐαρέστως τῷ θεῷ μετὰ εὐλαβείας καὶ δέους·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경건함과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넷슬 알란드에서 무서움이라는 표현이 있다. 


29절 καὶ γὰρ ὁ θεὸς ἡμῶν πῦρ καταναλίσκον.

『우리 하나님은 소멸(카타날리스콘)하는 불이심이라』 (개역개정)

『우리 하나님은 삼키시키는 불이시라』(헬라어 번역성경)

카타날리스톤(καταναλίσκον)은 완전히 삼킨다는 의미다. 성도가 성령의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켜지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 5장 4절에서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13장

1-2절Ἡ φιλαδελφία μενέτω. τῆς φιλοξενίας μὴ ἐπιλανθάνεσθε, διὰ ταύτης γὰρ ἔλαθόν τινες ξενίσαντες ἀγγέλους.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개역개정)

『형제의 사랑을 지속하고 나그네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서 어떤 자들이 알지 못하는 동안 천사들을 대접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형제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다. 형제를 사랑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서로 돕는 일이다. 형제들이 손님으로 왔을 때, 대접을 잘 하라는 것이다. 천사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다. 아브라함이 손님을 대접하다가 그들이 천사들이였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하러 갔다. 왜 히브리서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손님으로 온 형제가 비록 같은 성도이지만, 그들의 심령 안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3절 μιμνῄσκεσθε τῶν δεσμίων ὡς συνδεδεμένοι, τῶν κακουχουμένων ὡς καὶ αὐτοὶ ὄντες ἐν σώματ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개역개정)

『갇힌 자들을 기억하되 그들과 함께 갇힌 것 같이 생각하고 너희도 몸 안에 있은즉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을 기억하라.』(헬라어 번역성경)

갇혔다는 것은 인간은 죽을 때까지 흙에 갇혀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거듭난 자다. 교회 안에 형제들 중에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에게 갇힌 것을 기억하며, 그들을 대하라는 것이다. 그 감옥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하라는 것이다. 갇혀 있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서 하늘의 옷을 벗고, 육을 입은 것이다. 육체를 입은 모든 자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이를 깨달은 자는 다른 깨닫지 못하는 자를 생각하며, 그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4절 Τίμιος ὁ γάμος ἐν πᾶσιν καὶ ἡ κοίτη ἀμίαντος, πόρνους γὰρ καὶ μοιχοὺς κρινεῖ ὁ θεό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개역개정)

『결혼은 모든 것 가운데 존귀한 것이요 잠자리는 더럽히지 말아야 하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음행이라는 말은 영적 간음을 의미한다. 교회 안에서 음행은 복음과 다른 것을 섞는 일이다. 신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결혼)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복음 외에 다른 것들(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을 통해서 진리를 찾아보려는 자들인 것이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도 필요하고, 십계명도 지켜나가야 한다든가, 열심히 노력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식이다. 

5절Ἀφιλάργυρος ὁ τρόπος, ἀρκούμενοι τοῖς παροῦσιν. αὐτὸς γὰρ εἴρηκεν· οὐ μή σε ἀνῶ οὐδ’ οὐ μή σε ἐγκαταλίπω,

『돈을 사랑하지 말고 (호 트로포스) 있는 바(파루신)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엥카탈리포)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아노)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개역개정)

『회심한 너희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리라 하셨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호 트로포스(ὁ τρόπος)라는 헬라어가 번역되지 않았다. 호 트로포스는 영어로 turn(전환)이다. 즉 방향을 바꾼(회심) 너희는 돈을 사랑하면 안되고 라는 의미다. 여기에서 돈은 세상을 의미한다. 세상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의미한다. 회심했다고 말을 하면서, 돈을 사랑하면, 그런 사람은 원래 거듭난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파루신은 옆에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주시므로 그것을 만족하라는 것이다. 엥카탈리포는 남겨두다, 아노는 위로 보내다 라는 뜻이다. 주가 말씀하시기를 회심한 자에게 항상 함께하여 부족한 것을 채워주겠다는 의미다. 

6절ὥστε θαρροῦντας ἡμᾶς λέγειν· κύριος ἐμοὶ βοηθός, [καὶ] οὐ φοβηθήσομαι, τί ποιήσει μοι ἄνθρωπος;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보에도스)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개역개정)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께서 나를 친밀하게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보에도스(βοηθός)는 친밀하게 대하시고 돕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사람은 이와 같지 않다는 말이다. 

7절 Μνημονεύετε τῶν ἡγουμένων ὑμῶν, οἵτινες ἐλάλησαν ὑμῖν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ὧν ἀναθεωροῦντες τὴν ἔκβασιν τῆς ἀναστροφῆς μιμεῖσθε τὴν πίστιν.

『하나님의 말씀(톤 로곤 투 데우)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개역개정)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기억하며 완전히 비틀어서 밖으로 나온 그 사람을 위에서 주시하여 보고 그의 믿음을 본받으라.』(헬라어 번역성경)

톤 로곤 투 데우(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는 하나님이 소유하고 있는 말씀이신 그리스도 라는 의미다. 그 말씀을 전해주던 자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오늘날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전해주고 있는데,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자가 없다는 말이다.『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라는 부분은 번역이 수정되어야 한다. 

 ὧν(그들) τὴν ἔκβασιν(출구를) τῆς(그) ἀναστροφῆς (위에서 비틀다)ἀναθεωροῦντες(주의하여 보라) μιμεῖσθε(본받으라) τὴν πίστιν(믿음).

『완전히 비틀어서 밖으로 나온 그 사람을 위에서 주시하여 보고, 그의 믿음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즉 그가 완전히 비틀어졌는지 보라는 것이다. 행실의 결말이라 하면, 행위가 수반되는 믿음으로 오해될 수 있다. 정말로 말씀을 전해준 그가 고통 속에서 깨달은 것인지, 자신이 그런 위치에서 그를 주의해서 바라보고 본받으라는 것이다. 쉽지 않지만, 말씀을 전해주면 그것을 바로 믿지 말고, 그 사람의 상태를 생각해보고, 나도 호 로고스에 대한 그런 경험을 해보고, 맞다면, 그 호 로고스에 대한 그 사람의 믿음을 본 받으라는 것이다. 자신도 경험해보면, 말씀을 전해준 자가 얼마나 기도하는 자인지 깨닫게 되고, 그를 본받게 되는 것이다. 

8절Ἰησοῦς Χριστὸς ἐχθὲς καὶ σήμερον ὁ αὐτὸς καὶ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개역개정)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언제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예정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종말 때까지 이루어가신다. 

9절 Διδαχαῖς ποικίλαις καὶ ξέναις μὴ παραφέρεσθε· καλὸν γὰρ χάριτι βεβαιοῦσθαι τὴν καρδίαν, οὐ βρώμασιν ἐν οἷς οὐκ ὠφελήθησαν οἱ περιπατοῦντες.

『여러 가지 다른(크세나이스)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페리파툰테스)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개역개정)

『여러 가지 이상한 교훈에 끌려 다니지 말라 은혜로 마음을 굳게 함이 가치있는 일이요 음식으로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걸어가는 자는 음식으로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크세나이스(ξέναις)는 이상한 교훈이다. 호 로고스가 아닌 다른 것들은 이상한 교훈이라는 것이다. 헬라어로 알로스는 약간 다른 것을 의미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은 알로스다. 그런데, 여기 크세나이스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는 것을 가지고 복음과 결부시키려 하는 것이다. 복음과 율법주의를 섞는 것을 의미한다. 페리파툰테스는 행하다가 아니라, 걸어가다 라는 의미다. 복음의 핵심은 호 로고스인데, 주변을 걷는 것을 의미한다. 

10-13절ἔχομεν θυσιαστήριον ἐξ οὗ φαγεῖν οὐκ ἔχουσιν ἐξουσίαν οἱ τῇ σκηνῇ λατρεύοντες. ὧν γὰρ εἰσφέρεται ζῴων τὸ αἷμα περὶ ἁμαρτίας εἰς τὰ ἅγια διὰ τοῦ ἀρχιερέως, τούτων τὰ σώματα κατακαίεται ἔξω τῆς παρεμβολῆς. Διὸ καὶ Ἰησοῦς, ἵνα ἁγιάσῃ διὰ τοῦ ἰδίου αἵματος τὸν λαόν, ἔξω τῆς πύλης ἔπαθεν. τοίνυν ἐξερχώμεθα πρὸς αὐτὸν ἔξω τῆς παρεμβολῆς τὸν ὀνειδισμὸν αὐτοῦ φέροντες·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개역개정)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성막을 섬기는 자들은 제단에서 나오는 것을 먹을 권리가 없느니라 그 짐승들의 피는 죄로 인하여 대제사장이 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고 그것들의 살은 진영 밖에서 불사르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친히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그런즉 우리가 치욕을 짊어지고 진영 밖에 계신 그분께로 나아가자.』(헬라어 번역성경)

히브리서 기자는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을 이루어질 수 없음을 강조한다. 구약시대 대제사장이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는 피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비교하면서 설명하는 것이다. 

14절 οὐ γὰρ ἔχομεν ὧδε μένουσαν πόλιν ἀλλὰ τὴν μέλλουσαν ἐπιζητοῦμεν.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멜루산) 올 것을 찾나니』(개역개정)

『여기에서는 우리가 영원한 도성을 가질 수 없으나 다가오는 도성을 우리가 찾나니』(헬라어 번역성경)

멜루산(μέλλουσαν)은 의도하다 라는 의미다.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도하고 있는 그 도성을 찾는다는 것이다. 즉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의 성전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도도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의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다. 

15-16절 Δι’ αὐτοῦ [οὖν] ἀναφέρωμεν θυσίαν αἰνέσεως διὰ παντὸς τῷ θεῷ, τοῦτ’ ἔστιν καρπὸν χειλέων ὁμολογούντων τῷ ὀνόματι αὐτοῦ. τῆς δὲ εὐποιΐας καὶ κοινωνίας μὴ ἐπιλανθάνεσθε· τοιαύταις γὰρ θυσίαις εὐαρεστεῖται ὁ θεός.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아나페로멘)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개역개정)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희생을 통하여 찬양과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자 그것은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고백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하는 것과 나누어 주는 것을 잊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희생을 매우 기뻐하시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아나페로멘(ἀναφέρωμεν)은 예배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는 진리와 성령으로 드리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는 성전의 호 로고스에 성도의 영이 성령을 의지하여 히포모네(지성소로 들어가서)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바로 예배가 된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과 말씀을 주고 받는 것이다. 성도가 드리는 예배는 시간과 장소가 정해진 것이 없으며, 어떤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휘포모네를 하는 성도가 서로 모이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어떤 장소가 필요한 것이고, 그것이 교회라는 이름의 건물이 된 것이다. 교회의 건물은 가정 집도 될 수 있고, 다른 건물도 될 수 있다. 다만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은 아닌 것이다. 

찬송의 제사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라는 것이다. 이름은 말씀이신 호 로고스를 의미한다. 이 예배를 통하여 선을 행하고, 서로 나누어 주는 것이다. 선을 행하는 것은 호 로고스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며 그 말씀을 함께 한 자들과 서로 나누는 것이다. 결국 예배는 호 로고스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기의 의를 버리고, 세상에 대해서 죽고, 오직 심령 속에서 임재하시는 호 로고스의 말씀을 따르는 일이다. 

17절 Πείθεσθε τοῖς ἡγουμένοις ὑμῶν καὶ ὑπείκετε, αὐτοὶ γὰρ ἀγρυπνοῦσιν ὑπὲρ τῶν ψυχῶν ὑμῶν ὡς λόγον ἀποδώσοντες, ἵνα μετὰ χαρᾶς τοῦτο ποιῶσιν καὶ μὴ στενάζοντες· ἀλυσιτελὲς γὰρ ὑμῖν τοῦτο.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페이데스데)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개역개정)

『너희를 심령 속의 그리스도께로 인도되어짐이 확신되는 자들에게 복종하라 그들은 마치 자기가 회계 처리할 자인 것 같이 너희 혼을 위해 깨어 있나니 그들이 기쁨으로 그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인도하는 자는 호 로고스로 인도하는 것이다. 페이데스데는 확신하다 라는 의미다. 이 단어는 수동태이므로 확신되어진다 로 번역된다. 즉 너희를 인도하고 확신되어지는 사람에게 복종하라는 것이다. 이 문귀를 이용해서 교인들은 교역자들에게 무조건 복종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확실히 임재하는지 확신되어지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정말 확신되어지는 사람은 목자와 양의 관계처럼 혼을 위하여 행하는 자이지만, 가짜들은 양들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정말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확신되어 진다면, 근심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판단하여 확신되어질 수 있는가? 그 열매를 통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열매의 기준은 십자가와 성령이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인가? 그래서 성령세례를 받았는가 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심령 속에서 호 로고스의 임재를 경험하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유심히 관찰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인본주의, 율법주의를 통해서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들, 돈을 사랑하는 자들, 세상의 복을 기원하는 자들,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자들,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자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는 자들, 공의의 하나님을 전하지 않고 사랑의 하나님 만을 강조하는 자들, 심령 가운데 임재하는 호 로고스를 전하지 않는 자들을 경계해야만 한다. 

18절 Προσεύχεσθε περὶ ἡμῶν· πειθόμεθα γὰρ ὅτι καλὴν συνείδησιν ἔχομεν, ἐν πᾶσιν καλῶς θέλοντες ἀναστρέφεσθαι.

『우리를 위하여(페리 헤몬) 기도하라(프로슈케스데)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쉬네이데신)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개역개정)

『우리에 관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서 가치있게 행하려 하므로 주께서 함께 하심을 우리가 확신하노라.』(헬라어 번역성경)

페리 헤몬(περὶ ἡμῶν)은 우리에 관하여 기도하라는 것이다. 프로슈케스데(Προσεύχεσθε)는 관상기도를 의미한다. 심령 속에 임재한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는 기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너희들이 이러한 프로슈케 기도를 해서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목자에 대해서 확신하라는 것이다.『쉬네(함께)이데신(알다) συνείδησιν』은 양심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알게되는 것이다. 목자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주님과 함께 알게되므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19절 περισσοτέρως δὲ παρακαλῶ τοῦτο ποιῆσαι, ἵνα τάχιον ἀποκατασταθῶ ὑμῖν.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아포카타스타도:수동태)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파라칼로) 더욱 원하노라』(개역개정)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더욱 권면하노니 이것은 너희가 더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도록 함이라.』 (헬라어 번역성경)

아포카타스타도(ἀποκατασταθῶ)는 제자리로 돌아가다 라는 의미다. 말씀을 듣는 자들이 히브리서 기자가 원하는 그런 자리(상태)에 되도록 도와주는(권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파라칼로는 권면하다 라는 의미다. 

20-21절Ὁ δὲ θεὸς τῆς εἰρήνης, ὁ ἀναγαγὼν ἐκ νεκρῶν τὸν ποιμένα τῶν προβάτων τὸν μέγαν ἐν αἵματι διαθήκης αἰωνίου, τὸν κύριον ἡμῶν Ἰησοῦν, καταρτίσαι ὑμᾶς ἐν παντὶ ἀγαθῷ εἰς τὸ ποιῆσαι τὸ θέλημα αὐτοῦ, ποιῶν ἐν ἡμῖν τὸ εὐάρεστον ἐνώπιον αὐτοῦ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ᾧ ἡ δόξα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 ἀμήν.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개역개정)

『이제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를 통해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가치있는 일에서 너희를 완전하게 하사 자신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분 자신 앞에서 매우 기쁜 것을 너희 안에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분께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헬라어 번역성경)

영원한 언약은 새언약이다. 새언약은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 옛언약은 믿음의 선진들이 장차 오실 씨의 약속을 믿고 구원을 바라보았던 반면에, 새언약은 드디어 그 씨의 약속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고, 연합되어 부활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구원이 실현되는 것이다. 이것은 성도의 믿음에 의한 온전한 결과인 것이다. 

22절 Παρακαλῶ δὲ ὑμᾶς, ἀδελφοί, ἀνέχεσθε τοῦ λόγου τῆς παρακλήσεως, καὶ γὰρ διὰ βραχέων ἐπέστειλα ὑμῖν.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아나케스데 투 로구)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개역개정)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하는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너희에게 편지로 몇 자 적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아나케스데 투 로구(ἀνέχεσθε τοῦ λόγου)는 호 로고스를 위해서 (권면의 말을) 받아드려라 라는 말이다. 

23-24절 Γινώσκετε τὸν ἀδελφὸν ἡμῶν Τιμόθεον ἀπολελυμένον, μεθ’ οὗ ἐὰν τάχιον ἔρχηται ὄψομαι ὑμᾶς. Ἀσπάσασθε πάντας τοὺς ἡγουμένους ὑμῶν καὶ πάντας τοὺς ἁγίους. Ἀσπάζονται ὑμᾶς οἱ ἀπὸ τῆς Ἰταλίας.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및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개역개정)

『너희는 우리 형제 디모데가 풀려난 것을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너희를 보리라 너희를 인도하는 모든 자들과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이탈리아 출신의 사람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노라.』(헬라어 번역성경)

디모데를 언급하므로, 히브리서 기자가 바울이라고 추정한다. 인도하는 자는 참 진리로 인도하는 자를 의미한다. 교역자가 모두 인도하는 자가 아니라, 심령 속의 호 로고스를 전하는 자를 의미한다. 참 인도자와 거짓 인도자를 분별하는 것은 신도들 한 사람 한 사람 몫이다. 성도가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주님께 여쭈어보면 답을 주신다. 

25절Ἡ χάρις μετὰ πάντων ὑμῶν.

『은혜(헤 카리스)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개역개정)

『그 은혜가 너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에서 써서 디모데 편에 보내다.)』(헬라어 번역성경)

헤 카리스(Ἡ χάρις)는 그 은혜다. 말씀이신 호 로고스로 인한 은혜를 의미한다.  

스테파누스 성경은 [προς εβραιους εγραφη απο της ιταλιας δια τιμοθεου] (히브리 사람들에게 이탈리아에서 써서 디모데 편에 보내다.) 라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넷슬 알란드 성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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